금속노조의 도넛 경제학

2024.07.04 20:51 입력 2024.07.04 20:53 수정

민주노총 산하 제조업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는 지난 5월부터 충북 단양의 수련원에서 확대 간부교육을 매주 한 차수씩 진행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지회 임원과 대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으로 올해의 제목은 ‘기후위기 시대, 노동자가 주도하는 정의로운 전환’이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1박2일 동안 집중 교육을 진행하는 사례는 한국 노동조합에서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한 회당 몇개 지부를 묶어서 1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참여한다. 대다수가 남성 육체노동자인 금속노조의 분위기는 다소 투박하다. 좋고 나쁜 것에 솔직하며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 조합 간부들에게 기후위기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이야기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 노동조합에도 작업장의 불볕더위부터 탈석탄과 RE100이 요구하는 산업 전환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금속노조 집행부는 조합 간부들부터 기후위기 인식을 높이고 노동조합의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귀중한 교육을 기획했다.

아무래도 처음 시도하는 본격적인 기후 교육이다 보니 생소하고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타임오프 폐지와 노조 회계 공시 대응 같은 노동조합의 당면 투쟁 현안도 많은 시기에 굳이 기후위기 교육을 해야 하느냐는 불만도 들린다. 그러나 노조 집행부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기후위기를 공부하고 전략을 준비해야 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나도 강사로 참여하는 교육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다. 기후과학과 산업 전환을 다루는 어지간히 졸릴 만한 강의가 끝나면 ‘우리 노동조합 도넛 그리기’라는 모둠 토론이 이어진다.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제안해 암스테르담 등 여러 도시에서 활용되고 있는 아이디어인 ‘도넛 경제학’을 조합원들이 일하는 작업장에 처음 적용해보는 시간이다.

도넛의 바깥 고리는 노동자들의 생산활동의 결과로 지구에 주는 영향을 평가하는 9개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 미세먼지 발생 등이 과다하다면 ‘지구행성적 경계’를 돌파해 지구 시스템이 위험해질 것이다. 도넛의 안쪽 고리에는 경제적 처우와 노동시간, 교섭력 등 노동자들의 존엄과 안전을 보장할 작업장 내부 평가 지표들이 있다.

조별로 1시간 정도 자기 사업장의 현황에 대해 토론한 다음 지표마다 점수를 매겨 테이블에 펼쳐진 전지 위에 도넛을 그린다. 도넛이 동그랗고 매끈한 모양으로 그려진다면 그 작업장은 노동자와 지구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상태이고, 도넛이 안팎으로 삐죽빼죽하다면 인간에게나 자연에 모두 지속 가능하지 못한 작업장에 해당한다. 이 결과는 다음날 노동조합 기후 전략 수립 토론의 바탕이 된다.

참여자들은 노동조합 도넛을 통해 지구와 우리의 노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노동조합이 스스로 노동의 방식과 결과를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지금의 단체협약 관행과 노동운동의 자원으로 당장 기후위기를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작업장 도넛은 기후위기 속에 우리의 노동 현장이 어디쯤에 있고 무엇을 바꿔 나갈 수 있을지를 더듬어볼 수 있는 요긴한 식량이 될 것이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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