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보내는 경고 신호

2024.07.03 20:46 입력 2024.07.03 20:52 수정

[전중환의 진화의 창]커피가 보내는 경고 신호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가 나를 깨운다. 커피는 내게 따뜻함과 남다른 힘을 주고, 쾌락과 더불어 고통을 준다.” 커피 애호가였던 나폴레옹이 남긴 이 말은 진리다. 많은 이에게 커피는 삶의 원동력이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 없인 하루도 버티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전국에 커피전문점 수가 10만개를 넘었다니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커피는 왜 우리를 사로잡을까? 염려 붙들어 매시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이야기, 즉 카페인이 뇌에서 졸음을 유발하는 아데노신 분자를 차단해서 우리를 각성시킨다는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니. 익숙한 이 설명에 따르면, 카페인은 원래 커피, 차, 콜라, 마테, 구아바 같은 식물이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독소이다. 실제로 카페인은 달팽이나 곤충, 세균, 곰팡이를 죽인다. 그런데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우연히’ 화학적 구조가 유사하다. 커피를 마신 우리 뇌에 쏟아 들어온 카페인은 마치 자기가 아데노신인 양 아데노신의 전용 주차구역을 몽땅 점령한다. 아데노신은 주차할 자리가 없어 정처 없이 헤맨다. 졸음을 부르는 아데노신이 제 역할을 못하니 우리 두뇌는 쌩쌩하게 돌아간다.

담배를 다룬 이전 칼럼에서도 썼듯이, 식물 독소가 ‘우연히’ 인간의 신경전달물질을 닮는 바람에 우리가 카페인, 니코틴, 코카인 같은 약물에 탐닉하게 된다는 설명은 옹색하다. 식물은 자신을 먹으려는 초식동물을, 상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벌 주기 위해 독소를 진화시켰다. 그에 맞서서 초식동물은 독소를 회피하도록 진화했다. 왜 식물 독소에서 유래한 약물이 뜬금없이 인간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고, 인간은 약물을 더 흡입하지 못해 안달을 내게 되었는지는 자못 수수께끼다. 커피나무가 인간의 인지능력을 북돋우고 활력을 주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노릇이지만, 그 때문에 커피나무는 인간들에게 더 많이 학살당하지 않을까?

왜 카페인이 주의, 기억, 학습 능력을 증강하는가에 대한 새 가설이 2009년 진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하겐과 그 동료들에 의해 제안되었다. 자,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 바란다. 가설에 따르면, 카페인은 커피나무가 인간을 포함, 식물을 먹는 동물에게 보내는 경고 신호다. 이에 대응해 동물은 경고 신호를 잘 포착하는 신경 기제를 진화시켰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라고 꾸짖지 말고, 좀 더 들어 보길 바란다.

검은 바탕에 샛노란 줄무늬가 난 말벌이나 오렌지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난 제왕나비는 이목을 확 끈다. 이처럼 독을 지니거나 맛이 없는 동식물은 유별난 색깔, 냄새, 혹은 소리를 통해 포식자에게 또렷이 경고한다. “나를 먹어봤자 재미없을걸!” 한 번 먹어보려 했다가 된통 당한 포식자는 먹이의 튀는 특성을 기억에 똑똑히 저장한다. 다음부터 그렇게 생긴 놈들은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경고 신호는 먹이와 포식자 둘 다에게 이득임을 유의하자. 먹이는 안 잡아먹혀서 좋다. 포식자는 독한 먹이를 피해서 좋다.

커피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덩치 큰 포유류도 커피콩을 먹으면 바로 죽을 만큼 맹독성의 독소를 만드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어쨌든 자신을 뜯어먹은 포유류가 “어디에 있는, 어떻게 생긴 나무를 먹었더니 쓴맛만 나더라. 다시는 안 먹어야지”라고 잘 학습하게 하면 된다. 어떡할까? 말벌처럼 휘황찬란한 빛깔을 굳이 진화시킬 필요도 없다. 포유류에게 소화되었을 때, 포유류의 중추신경계에 들어가 주의, 기억, 학습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켜 다음부터는 포유류가 커피나무를 회피하게 만드는 화합물이 진화하면 된다. 요컨대,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은 커피나무의 쓴맛을 경험한 포유류 초식동물이 커피나무의 형태와 장소를 잘 기억하고 회피 학습을 하게 만드는 경고 신호다.

향기로운 커피를 사이에 두고 상대방과 이런 대화를 시도하면 어떨까?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왜 맑아지는지 아세요? 커피나무가 자기를 약간 먹고 쓴맛을 느낀 동물이 앞으로는 절대 자기를 먹지 않도록 자신의 생김새와 위치를 또렷이 기억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래요. 물론 동물도 쓴맛이 나는 커피나무를 회피하니 좋은 일이고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런 각성 효과에 반해서 전 세계적으로 커피를 엄청나게 소비하고 있으니, 커피나무는 참 황당할 거예요. 그렇죠?” 물론 상대방이 이렇게 대꾸할 수 있다. “하나도 안 재미있어. 너 T야?”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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