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 호른 연주자의 괴로움과 즐거움

2024.07.04 14:59 입력 2024.07.04 20:34 수정

호르니스트 김홍박 인터뷰

입술 관리 위해 매운 음식 자제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 거쳐

보기 드문 호른 음반 발매

호른 연주자 김홍박씨가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자신의 호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호른 연주자 김홍박씨가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자신의 호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 자주 가는 관객이라면 교향곡의 웅장한 절정부, 혹은 아련한 도입부에 호른 소리가 이상하게 들린 경험이 종종 있을 것이다. 호른 연주자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을까. 지난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호르니스트 김홍박(43)은 호른이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라 불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호른은 하나의 관에서 음정을 변화시킵니다. 입술의 떨림과 호흡의 양을 조절해 음을 냅니다. 피스의 폭이 좁은 데다 음역대는 넓고 음의 간격이 촘촘해요. 호흡이 조금만 변해도 ‘삑사리’가 납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이겨낸 뒤에야 좋은 소리를 낼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김홍박은 한국의 대표적인 호른 연주자다. 정명훈 시절의 서울시립교향악단 호른 부수석, 북유럽의 명문 악단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을 역임했다. 지난해 1학기부터는 모교인 서울대 음대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5일엔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호른으로 정식 음반을 선보인다.

그가 호른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는 노래 부르길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어딜 가도 수줍음이 많아 말은 못해도 노래는 잘했다. 다만 남성 목소리는 변성기가 있으니 당장 음악에 뛰어들 수는 없었고, 그러던 차 누나의 친구가 호른을 연주하는 걸 보고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악기였다. 도레미파 제대로 불고 곡 하나 소화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그는 “너무 스트레스 받아 악기를 부수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김홍박은 “호른 연주는 노래하는 것과 비슷하다. 몸이 릴랙스돼 있어야 하고 열린 소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몸 관리가 필수다. 입술과 목 상태는 특히 중요하다. 혹시 입술이 부을까봐 매운 음식은 잘 먹지 않고 입술 씹을까봐 밥도 천천히 먹는다. 잠도 무조건 많이 자려 한다. 오케스트라 투어를 다니면 도착 첫날은 일정이 없어 다른 연주자들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지만, 김홍박은 호텔 방 안에만 머무른다. 오케스트라의 호른 연주자는 수가 적어 대체자를 구하기도 어렵다. 연주자 개인이 스스로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연주를 틀리지 않기 위해서만 신경을 쓴다면 좋은 음악을 할 수 없다. 김홍박은 “실수는 할 수 있다. 전체 음악에 맞지 않는 소리 색깔을 낸다거나 영혼 없는 연주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 호른 연주자의 괴로움과 즐거움

이번 음반에는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환상소곡집’ ‘세 개의 로망스’와 브람스의 ‘호른 삼중주’를 담았다. 모두 “호른을 표현하는 레퍼토리가 개발되기 시작한 시기의 곡”이다. 그는 이 곡들을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여는 리사이틀에서도 선보인다.

호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음악으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들을 추천했다. 특히 ‘영웅의 생애’에서 호른은 ‘영웅’을 묘사한다. 호른은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하고 힘 있는 음색으로 영웅의 서사를 써나간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2악장도 호른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브루크너 교향곡 4번 1악장 역시 현악기의 트레몰로 위로 호른이 부드러운 안개 같은 소리로 곡의 도입을 알린다. 김홍박은 이 대목이 호른 연주자에겐 특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작의 도입부라 긴장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음을 내면 거친 호흡에 자칫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박은 여러 교향악단을 거친 만큼 세계적인 지휘자도 많이 경험했다. 인상적인 인물로는 우선 오슬로 필하모닉 재직 당시 객원 지휘자로 만났던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를 꼽았다. 현재 97세의 현역 지휘자인 그는 “오슬로에 올 때마다 그 어떤 젊은 지휘자보다 기분 좋은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열정적이었던 분”이며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해준 분”이었다. 서울시향에서 만난 정명훈은 “처음엔 많이 긴장했지만, 함께 있으면 귀와 몸이 열리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한때 한국의 관악 연주자 실력이 부족하다는 인식도 있었으나, 김홍박은 “이제 젊은 세대 연주자들은 외국 악단과 비교해도 테크닉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며 “유럽 교향악단에서도 목관 파트는 한국인이 이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실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하고 열의 넘친다”면서도 “코로나19 때 함께하지 못한 영향인지 앙상블의 교감이 어색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호른 연주자 김홍박씨가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자신의 호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호른 연주자 김홍박씨가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자신의 호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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