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위치감각

2020.01.01 20:35 입력 2020.01.01 20:38 수정

올해 경제는 작년보다 다소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상황을 맞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쓸 계획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선을 앞둔 미국은 경제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중 무역전쟁을 잠시 유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의 도움으로 러시아, 브라질 등 혼란에 빠져있던 개도국들도 다소 회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제직필]2020년의 위치감각

올해 경기회복 전망의 핵심은 투자와 수요가 늘었다기보다는, 약발이 빠른 재정 투입으로 경기부양을 시도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디플레이션 원인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단기 땜질식 처방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올해 세계 경기 회복을 다소 폄하하는 이유는 지금이 바로 세상의 구조적 흐름이 바뀌는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와 한국이 위치한 곳은 과거 어떤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낯선 지점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가정이 파괴되고 있지만, 종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도달해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4차 산업혁명은 올해에도 지구촌을 강타할 것이다. 대부분의 공장들은 스마트팩토리 전환에 속도를 낼 것이다. 내수시장은 온라인 상거래나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더 많은 일자리가 파괴될 것이다. 결국 통제가 어려운 기술발전이 경제를 넘어 사회 각 분야를 해체시키고, 사회 전체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끌려가는 과도기 속의 한 해가 될 것은 자명하다.

선진국들은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용 증가와 장기간 이어진 수요·투자 부진으로 구조적인 불황 속에 놓여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을 찾지는 못할 것이다. 공급과잉이 심각한 구경제 산업들은 글로벌 차원에서 제로섬 경쟁이 강화되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겠지만, 승패를 알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다.

사회 양극화 현상은 지금도 사상 최고 수준이지만,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이 확산되면서 강화될 것이다. 사회는 이런 구조적 문제의 해법을 놓고 더 심각하게 분열되면서 각국 정치권은 포퓰리즘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고전적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 성향이 가미된 포퓰리즘으로 통합되고 있다. 아마 11월에 치러지는 미국의 대선은 서로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 강하게 충돌하는 최초의 선거가 될 듯하다.

한국도 이런 세계적 추세에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그 증세가 보다 심각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올해 한국은 출생인구보다 사망인구가 더 많은 최초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단군 이래 반만년간 이어온 인구 증가가 멈추는 해이기도 하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연간 80만명씩 은퇴를 하고 있다. 당연히 내수의 기반이 되는 수요가 구조적으로 줄어들면서 자영업 등 내수산업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특히 올해는 경제개발이 시작된 지 60년에 도달하는 해이다. 지난 60년 한국의 경제성장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성과였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중후장대형 제조업은 이제 세계적 차원에서 공급과잉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시대를 맞아 1만달러시대의 소비는 자연도태되고 있다. 베트남 쌀국수와 스파게티 식당이 칼국수집, 분식집을 퇴장시키는 이종격투기를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로 돌려서는 안된다. 4차 산업혁명, 인구 감소에 대한 아무런 대비 없이 주력산업이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인 고령자 빈곤율과 상위 10%에 쏠린 소득 점유율 때문에 60년 성공신화를 이룬 방식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해진 점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역사적 전환이 한국과 세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구조적 전환에 대응하는 국가 전체 차원의 노력 없이는 올해 약간의 경기 회복은 의미가 없다. 투자, 교육, 생활 방식 모두를 바꿔야 하는 거대한 전환기에 돌입했다는 위치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 눈앞의 경기부양에만 매진한다면 올해 경제도 작년과 차이가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릴 이유는 없다. 다른 국가들도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의 오프라인 상점은 잇따라 폐점하고 있다. 프랑스는 연금 개혁으로 국가가 마비되어 있고, 일본 경제는 무제한의 자금 살포에도 제자리걸음이다. 선진국 전체가 구조적 전환의 수렁 속에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세계 전체가 잘되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한국만이라도 구조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수축사회에서의 생존 방식은 제로섬 게임적 인식이다. 타국을 압도하는 고슴도치형 사회와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구조전환에 실패한 국가로부터 빼앗아 올 파이는 아직 충분하다. 결국 올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조전환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있다는 위치감각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