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의 시대

2019.03.31 20:44 입력 2019.03.31 20:50 수정

‘한반도 평화의 시대’의 꽃이 피리라는 기대가 하노이에서 꽃샘추위를 만나서 시들어버렸다. 작년 눈부시게 뻗쳐나간 남북, 북·미 관계가 하노이에 그대로 이어지고 한반도 평화의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었다. 그래서 우석대학교 동아시아평화연구소에서는 개교 40주년 기념 행사로 5월9일에 ‘한반도 평화의 시대와 동아시아의 변모’라는 주제로 연구소의 첫 번째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기로 했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가 우리 겨레에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한반도 분단으로 말미암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 농락당해온 동아시아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북·미관계의 제자리걸음으로 ‘한반도 평화의 시대’의 시작은 좀 지체되겠으나, ‘한반도 평화의 시대’는 꼭 온다는 낙관주의와 와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소망을 품고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동서남북인의 평화찾기]한반도 평화의 시대

종전에는 ‘통일’과 ‘통일시대’를 많이 강조했었는데, 나는 통일에 이르는 길고 점진적인 변화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싶다. 우선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하며, 통일에 이르는 길고도 점진적인 과정을 착실히 다지면서 남북이 신뢰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단시대’에서 ‘평화의 시대’, 그리고 ‘통일시대’로의 발전의 그림을 확실히 그려야 한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듯이 전쟁과 살상이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하게 된다. 유럽의 중심부를 무대로 기독교의 신교와 구교가 벌인 처참한 30년전쟁(1618~1648)은 기근과 전염병까지 더해지면서 400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고, 전쟁터가 된 독일 일원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종교적인 광기로 시작한 엄청난 파괴의 결과, 당사자들은 더 이상 싸울 기력도 체력도 다하여 전쟁은 종결되었다. 평화가 온 것이다. 그뿐이랴 베스트팔렌 종전회담에서 신앙의 자유(종교적 관용), 국가의 자주독립·평등·내정불간섭이라는 주권국가체제, 국제법체제 등 근대 국제사회의 핵심적인 룰이 만들어졌다.

우리 겨레도 근대 이후 외세의 침략과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며, 6·25전쟁에서는 22만㎢의 한반도에서 3년간 400만명에 달하는 인명이 희생되었고, 이북의 주요 도시는 지상의 건물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누구보다 평화를 열망할 텐데, 전쟁은 완전히 종결되지 않고, 남북 상호 적대와 증오가 증식되어왔다. ‘세계에서 마지막 잔존하는 냉전’의 현장에서 북·미의 대립은 극을 치닫고 핵·미사일의 극한적 대결로 전쟁 직전까지 위기가 고조되었다.

핵·미사일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그 뿌리인 38선을 사이에 둔 적대관계를 종결시켜야 한다. 1차적으로는 북한과 미국의 종전선언에 이어 북·미 양자 간, 또는 한국, 중국을 넣은 3자 또는 4자 간의 평화협정 체결과 정상적인 외교관계의 수립으로 일단 당사자 간의 전쟁 종결 절차는 마감한다. 이 평화협정에 대한 보장장치를 만들기 위해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관계국을 포함한 보장조약이나 남북, 일본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비핵·평화지대’의 설정도 생각할 만하다. 또한 유엔에서의 종전결의나 평화결의도 필요하리라.

이들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외부적인 여건의 조성과 더불어 필요한 것이 한반도 내부적인 여건의 마련이다. 바로 통일이라는 정치적 결합을 우선하는 것보다, 상호적이고 단계적인 소통, 교류, 협력, 합작, 공동번영, 화해를 통한 화학적인 융합의 과정을 거쳐가는 것이 좋으리라.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이번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미국에 의해 제약되어온 한국의 주권 회복일 것이고, 친일파, 반공파시스트의 청산과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의 폐지를 통한 인민주권의 확립과 민주주의의 전진일 것이다. 또한 ‘천안함 사건’과 같은 남북 현안 문제의 진상규명을 위해 ‘남북 진실화해위원회’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시대의 새로운 정치를 펼치기 위해 이미 논의된 연방정부나 연방의회, 전 민족회의, 남북조절위원회 등을 재검토하여, 민중 중심의 남북 소통기구, 숙의기구 또는 의사결정기구가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남북 공통의 가치관 함양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찰떡궁합이 연출되었던 것은 양 정상의 가슴속에 한반도 평화, 전쟁 발발의 절대 저지라는 공통의 신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는 새로운 정치의 창조와 새로운 정치의식의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분단시대에서 한반도는 단절과 폐쇄의 상징이었지만,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는 동아시아의 소통과 교류의 교차로가 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 가치의 생산과 교환의 마당이 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진보를 애호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장이 될 것이다.

오랜 반제국주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 속에서 끈질긴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해 드디어 민중들은 깨어 있는 주권자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이제 한국도 정의롭지 못한 국제질서에 감연히 맞서고 평화를 창조해낼 수 있는 주권국가가 되어 ‘동아시아 평화의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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