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거짓말 그리고 정치

2019.04.10 20:32 입력 2019.04.10 20:43 수정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거짓말이 있는데 거짓말, 지독한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9세기 말 영국의 보수당 정권에서 총리를 지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한 말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렇게 알려진 것 자체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금연”이라며 “자신은 매일 담배를 끊는다”고 너스레를 떨던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제직필]통계, 거짓말 그리고 정치

누구의 말인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이 말은 ‘진실을 왜곡하려는 정치인들과 사이비 학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게 통계’라는 점을 경고하는 경구이다. 통계는 전문가들의 과학적 논거로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되지만 정치적 의도를 가진 집단들에 의해 악의적인 왜곡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통계 자체는 숫자에 불과하니 참과 거짓을 논할 대상이 아니지만 그 숫자 속에 담겨있는 정보는 순수하고 깨끗한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숫자로부터 올바른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숫자들에 끼어 있는 먼지들을 먼저 털어내야 한다.

작년에 가계동향조사의 분기별 자료가 발표되면서 소득분배지표가 악화되었는지의 여부를 놓고 진행된 논란만큼 우리나라에서 통계를 둘러싸고 왜곡과 거짓말이 요란스럽게 진행된 경우도 드물 것이다. 통계청은 작년에 분기별로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의 총소득이 2017년 동 분기에 대비하여 7.0~17.7% 줄어들었다고 발표하였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마뜩잖아하던 보수성향의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이러한 발표가 나오자 일제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총체적 실패라며 당시 경제정책을 총괄하던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은 바 있다.

나는 가계동향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작년 8월에 이것은 논란이 될 수 없는 사안임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작년 8월29일자로 경향신문에 기고한 ‘어설픈 통계조작의 음모론’이라는 칼럼에서 나는 발표된 자료만을 가지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무리스럽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인데, 첫 번째는 2016~2018년 사이에 표본수와 표본구성에서 큰 변동이 생겼고, 두 번째는 2017년과 2018년 사이에는 표본을 추출하는 인구센서스도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신문기고뿐 아니라 국회토론회에서의 발표와 라디오 및 TV의 많은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보수정치인들, 이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사이비 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였다.

올해 3월 말 개최된 한국재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강창희 중앙대학교 교수와 나는 공동연구논문에서 2018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나타난 소득분배 악화 현상이 실제와 다를 가능성이 있음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

우리는 지난해 1분위 가구의 소득 감소에 영향을 미친 요소를, ‘2017년과 2018년 사이에 모집단과 표본이 변경되면서 나타난 변동’과 ‘진정한 변동’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진정한 변동’은 1990년대 중반 이래 구조적이면서도 추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불평등 및 양극화의 심화에 의한 변동부문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시행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의한 변동부문을 함께 포함한다.

‘이중차분법’이라는 통계학적 분석 방법을 사용하여 분위별 실질소득의 ‘진정한 변동’을 분석한 결과, 7.6% 감소한 것으로 발표되었던 작년 2분기의 1분위 총소득은 2017년 2분기와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발표에서 7.0% 줄어든 것으로 나왔던 지난해 3분기 1분위 소득 역시 2017년 동기대비 0.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4분기 소득의 경우에는 1분위 평균 (실질) 소득의 진정한 변동이 마이너스 10.2% 정도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2017년도 4분기의 1분위 평균 소득이 다른 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점을 감안하면 2018년 4분기의 1분위 소득 감소를 2018년 정책들의 결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아울러 우리는 2019년 1분기에는 2018년 1분기와 비교할 때 최소 마이너스 1%에서 최대 2% 정도의 진정한 1분위 총소득의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물론 우리가 사용한 추정방법은 몇 가지 가정에 의존하며 이들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우리 논문의 추정치는 진정한 소득변동을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통계를 왜곡하지 말고 과학적이고 엄밀한 연구방법을 통해 소득분포의 진정한 변동 양상이 규명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