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

2019.04.03 21:03 입력 2019.04.03 21:09 수정

시장의 자율에 맡기라는 자유방임은 기존 제도·경제질서를 전제한 자유를 의미하여 모순적 표현이다. 자유방임이 문제를 야기할 때 제도가 바뀌고 경제질서가 진화한다. 그래서 자유방임은 나쁜 제도와 나쁜 질서에 대해서는 방관적인 태도이다.

[경제직필]공정한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유방임의 나쁜 결과였고 기존 금융규제의 결함을 보완하는 제3차 바젤협약과 같은 개혁을 낳았다. 이 위기의 불똥은 불평등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성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잘나가던 금융회사 임원들이 일반 직원의 수십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최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 그리고 전체 부의 70% 가깝게 소유해도 되는가?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시 맨해튼 섬에 진을 친 대규모 시위대가 금융업 전반에 팽배한 도덕적 해이와 탐욕에 분노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경제학자들에게 불평등은 다소 당혹스러운 주제다. 불평등을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어떤 자료를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 연구하지만 이런 기술적 영역을 벗어나 불평등이 왜 문제인지, 얼마만큼의 불평등이 적당한지 등 규범·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답이 없거나 시원치 않다.

불평등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에는 시장의 가격 결정 원리가 있다.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의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어 더 노력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높은 대가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더 혁신적인 기업에 더 높은 이윤이 보장된다. 이처럼 노력과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공정하다는 것이 통용 윤리다. 물론 그 격차가 너무 큰 것이 문제일 수 있지만.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이런 공정한 불평등이 아닌 나쁜 불평등이다.

나쁜 불평등이 일어나는 첫 번째 이유는 취업과 인사가 노력과 능력이 아니라 부당한 차별과 청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항공 재벌가의 졸렬한 경영행태가 알려져 공분을 일으켰다. 주식시장과 기업경영을 관할하는 제반 제도는 재벌가 인사특혜를 견제하는 데 무력했고 부적격자들이 기업경영을 책임지는 무도한 질서가 자리 잡았다. 최근 도입된 기금관리규율, 스튜어드십코드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여 대한항공 재벌인사를 경영참여에서 배제한 것은 주목해야 할 변화다. 투명한 규율에 따라 부적격 경영을 견제하는 것은 시장질서를 정상화하는 길이다. 이를 두고 “연금사회주의” 운운하는 선동적 파시즘이 난무하는 것은 재벌 친·인척의 부적격 경영 참여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대했는가를 방증한다. 매번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정·관계 고위인사와 사회지도층 자제의 취업과 인사 부정 역시 나쁜 불평등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기회불평등은 가계의 지위, 인종, 성, 지역과 같이 개인이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배경 때문에 발생하는 나쁜 불평등이다. 양육, 교육, 건강 등 개인의 삶에 모든 선진국들이 개입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나쁜 불평등 때문에 삶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요즘 ‘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은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과 경제적 성취에 미치는 기회불평등을 상징한다. 이런 말이 유행할 만큼 기회불평등이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교육제도가 계층 간 교육격차를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교육격차는 경제적 기회불평등의 시발점이다. 여성이 겪는 기회불평등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임금 격차와 경제활동 참가율에 대한 최근 자료는 여성이 가장 차별받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나쁜 불평등은 불공정·불완전 시장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시장경제는 경제적 의사결정이라는 투표로 시장가격과 분배를 결정한다. 차별 없고 모두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이상적 시장은 이런 경제적 투표권을 국민 모두에 균등히 부여한다. 우리 시장은 이런 이상에서 크게 벗어나 상당수 국민들의 경제적 투표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경제력에 따라 투표권을 준다. 이렇게 배제된 국민들에게는 반시장적 굴레가 씌워지고 나쁜 불평등이 발생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투표권이 있는 이들을 위해 작동할 뿐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및 다양한 차별과 배제가 우리 시장에 만연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 차별,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불공정 거래,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 그리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비대칭적인 협상력이 이런 나쁜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나쁜 불평등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이를 개선할 제도개혁이 뒤따라야 하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다. 개혁안이 미비하면 비판받아 마땅하나 자유방임이란 방관적 태도가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건설적 비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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