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모욕

2019.08.26 20:43 입력 2019.08.26 20:44 수정

[박래군 칼럼]의도된 모욕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각종 의혹이 블랙홀이 되어 버린 가운데 청와대는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김기수 변호사에 대한 인사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대책 등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될 것이다.

[박래군 칼럼]의도된 모욕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세월호 유가족과 5·18 단체들은 즉각적으로 김기수 변호사의 사참위 위원 임명 반대 의견을 표명했고, 어제는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북한군이 전남도청 지하실 지하에서 지휘했다”는 등의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인터넷 언론사 ‘프리덤뉴스’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가 진실규명을 목적으로 설립된 사참위의 위원으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5·18에 대한 가짜뉴스를 생산해서 유포한 일로 해서 이 매체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접속 차단’ 조처를 받기도 했다. 그러니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견이 괜한 걱정이 아니다.

지난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당시에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극우파 인사인 고영주 변호사를 비롯한 우익인사들을 추천하여 특조위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정점으로 당정청이 일사불란하게 작전을 하듯 세월호특조위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새누리당이 이들을 임명한 목적은 특조위가 청와대의 업무 적정성을 조사하기로 하자 곧바로 드러났다. 특조위가 “반국가단체화”했다며, 해수부가 작성했던 지침대로 움직였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작전에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이런 방해공작 끝에 특조위는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하고, 강제 종료되고 말았다. 당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특조위의 활동기간을 법 시행일로부터 기산하여 2016년 9월30일로 종료된다고 우기고 밀어붙였다. 위원도 임명되지 않은 때였고, 예산도 배정되지 않은 그 시점부터 조사기간이라고 산정하는 것은 억지였다. 장관급 위원장인 이석태 특조위 위원 등이 릴레이 단식농성을 하면서까지 강제 종료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당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청와대는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특조위는 법정 조사기한 8개월을 앞두고 막을 내린 불운한 조사기구로 기록되었다. 물론 특조위가 제대로 된 진상규명 작업을 하지 못해 이후에 선체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활동해야 했고, 뒤를 이어서 지금 사참위가 탄생했고, 활동 중이다.

자유한국당은 사참위 위원만 부적절한 인사를 추천한 게 아니다. 어렵게 국회를 통과한 5·18진상규명특별법은 지난해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특별법이 시행되었는데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진상조사위원회는 구성조차 안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5·18 망언을 하는 등 5·18 진상규명에 의지가 전혀 없는 인사를 추천하자 이 중 일부 위원을 청와대가 반려했고, 이에 반발해서 자유한국당이 후속으로 다른 인사들을 추천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인권활동 전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상철 변호사를 추천해서 인권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이 추천하는 인사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 위원회의 설립목적에 반하는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추천한다는 점이다.

이런 전통은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전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현병철씨를 임명하였는데, 그는 차별적 언사를 공식 회의석상에서 사용하는 등으로 해서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새누리당에서는 인권활동 경력이 전무한 홍진표, 유영하 등을 상임위원으로 추천하였다. 그 결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이 국제적 주목을 받던 위치에서 국제적인 우려를 낳는 처지로 몰락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사참위 모두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실을 밝혀서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는 국가기구들이다. 지금까지 미루어졌던 정의를 실행해야 하는 기구들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가족을 위한다고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그 결과로 가족이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을 봐야 했던 사람들이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은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 있는 아이들을 구하지 못해 죽고만 싶었던 사람들이다. 두 참사에서 모두 국가는 피해자들을 위로하지 않았고, 사건의 진상규명을 방해만 하고 나서 분노를 샀다. 이제 이 정부에서 새롭게 진상규명을 통한 안전사회의 미래를 만들어보겠다는 사참위에 부적절한 가짜뉴스를 유포한 언론사의 대표를 앉힌다는 것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행위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고,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며, 우리 사회를 보다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인사가 보수진영에는 그렇게도 없는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에 피해자를 조롱하고, 모욕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인사를 굳이 추천하는 심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적절한 인사를 추천하는 건 자신들이 저지른 참사의 책임을 외면하고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참사들의 진실규명을 통하여 다시는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은 비극이 없도록 하자는 위원회 설립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결국 미래의 안전마저 걷어차는 범죄적 행위다.

사참위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밝혀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시간도, 인력도 부족하다. 자유한국당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 정당이다. 그들이 집권했을 때 생긴 참사에 대해 지금이라도 책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닐까. 자유한국당은 의도적인 모욕을 멈춰야 한다.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활동하는 사참위 위원에 김기수 변호사를 임명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어왔는데, 이제는 이런 반인권적인 행동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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