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집, 영화 추천

2019.09.09 20:54 입력 2019.09.09 20:58 수정

추석이 다가왔다. 밥상 위로 오고 갈 답 없는 설전을 어째야 할지, 벌써부터 골치 아픈 분들도 계시겠다. 내 코도 석 자인 마당에 가족 간의 정견 차를 피해갈 묘안을 제안하기는 어렵고, 오늘은 독자들께 추석 연휴 기간 중 즐기실 만한 영화 몇 편을 소개해드릴까 한다.

[직설]추석 특집, 영화 추천

우선 화제작인 <우리집>(윤가은)과 <벌새>(김보라)부터 챙겨 보시면 좋겠다. 두 작품 모두 4만명 정도의 관객을 극장가로 유혹했다. 쌍 천만 시대에 4만명이라니. 별일이 아닌 듯하지만, 실제로 한 작품이 2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하기도 하는 독과점의 시대에 단 몇 십개의 스크린으로 짧은 기간에 이 정도 관객을 모으는 건 쉽지 않다. 그야말로 입소문이 대단하다는 의미다.

두 작품 모두 ‘어른 없는 시대, 아이들의 초상’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최근 여성감독이 연출한 주목할 만한 ‘작은 영화’들 중에 이런 영화가 꽤 있다. 윤가은의 전작 <우리들>(2015)을 비롯하여 김인선의 <어른도감>(2017), 차성덕의 <영주>(2018), 안주영의 <보희와 녹양>(2019), 그리고 유은정의 <밤의 문이 열린다>(2019)가 그 작품들이다.

이 영화들에서 어른들은 부재하거나, 가시밭길 위에서 분투하느라 주위를 살필 여력이 없다.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지혜와 자원을 나눠주는 존재로서의 ‘어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때때로 기댈 수 있는 어른’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아이들은 어떻게든 스스로 자라야 한다.

사실 한국영화에서 ‘어른’을 못 본 지는 좀 됐다. 30~40대 이상의 남자 배우들이 스크린을 독식하고 있는데, 왜 어른은 없을까? 그 남자들은 이유를 알 수 없이 화가 나 있거나, 보고 있기 처량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있거나, 세계를 태우고 파괴하느라 바쁠 뿐, 누구 하나 인간으로서 성숙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것 말고는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직 속물의 인정투쟁만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대사가 그토록 인기가 있었던 건, 그 말이 한국영화의 시대정신을 대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어른은 <소공녀>(2017)의 미소였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고 그것을 찬찬히 추구하는 존재로서, 미소는 이미 성장을 끝낸 사람이다. 아등바등 사는 친구들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건 그가 어른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전고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캐릭터의 성장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성장서사를 배제함으로써 그 어떤 작품보다 분명하게 “성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장은 사회가 정해준 ‘어른의 규격’에 스스로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든, 당신의 마음이든 말이다.

성장이란 홀로서기가 아니라 세계와 기꺼이 함께 서겠다는 용기 속에서 가능해진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그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만약 나이만 찬 상태로 성숙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밤의 문이 열린다>의 혜정처럼 죽은 뒤에야 자라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무심히 흘려보낸 순간들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바로잡기 위해 하루하루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작은 사람들의 시간은 하찮은 것이라고들 여긴다. 하지만 과연 다 큰 남자들끼리 몰려다니면서 술 마시고 주먹질하는 권모술수의 스펙터클과 비교해 이 뜨거운 성장의 순간들을 사소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볼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는가? 이런 이야기의 편향이야말로 9일 임명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갑론을박에서 봤던, 본인의 일상은 나 몰라라 해도 국가의 큰일은 건사할 수 있다는 그 허황된 믿음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나.

스포일러 없이(!) 일곱 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몰아보기’하시기를 권한다. 각각의 작품들이 모여 좋은 질문을 품은 반짝이는 영화적 우주가 형성될 수도 있을 테니까.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