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야 얻을 수 있는 것

2019.09.16 20:57 입력 2019.09.16 20:59 수정

1년 전 MBC는 스스로 신랄한 비평대에 서겠다는 각오로 옴부즈맨 프로그램의 내실화를 선언했고, 담당자가 된 나는 비평토크쇼 <탐나는 TV>(토요일 오전 8시10분)의 첫 방송을 작년 9월22일 내보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프로그램을 적어도 볼 만한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우선 현재 TV 비평 지형을 형성하는 유력 평론가들을 많이 모셨다. 그리고 발언에 제약을 두지 않기로 약속했다. 또 특정 TV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날것 같은 반응을 해당 프로그램의 PD가 지켜보는 코너, 단순 댓글 소개를 넘어 시청자들의 반응을 빅데이터로 보여주는 코너, 담당 PD를 어렵지만 자주 초대해 논쟁에 참여시키는 코너 등 다양한 포맷을 선보였다. <탐나는 TV>는 작은 프로그램이지만 지상파의 공적 의무에 더 기여하는, 사내 제작진이 전보다 관심 있게 보는, 출연자들이 여러 프로그램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는, 시청자들이 조금 볼 만하다는 반응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고 있다.

[직설]외로워야 얻을 수 있는 것

돌이켜보면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신랄한 비판을 받은 제작진 중에선 ‘팀킬’ 아니냐며 화내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년은 새로운 체제가 운영을 시작한 과정이었고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기에 비판을 더 따갑게 느꼈다. 한편으론 떨어진 사기를 올릴 위로가 내부적으로 더 필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시청률과 댓글을 넘어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종합적으로 보여줘 제작진이 참고할 만한 것을 내놓고자 노력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이 조금 더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전달될 수 있게 고민했다. 그럼에도 칭찬은 쉽게 휘발되었고 비판은 오래 남았다.

출연자들과는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평론가, 데이터 분석가, 크리에이터 등으로 구성된 출연진은 시청자들을 대변하기 때문에 나에게 갑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내가 섭외한 출연자로 을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겠다며 칼끝을 바짝 세운 그들과 코너별 콘셉트를 생각하며 방향을 잡아가야 하는 나는 매주 미묘한 긴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만나면 반가워 덕담도 주고받지만 소위 말하는 친분은 잘 쌓이지 않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함께 일하는 PD와 작가들에게 기댈 상황도 못 된다. 그들은 우리 프로그램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토크 소재로 삼는 프로그램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두 번째로 생각할 일이다. ‘무제한 자사 비평’이라는 콘셉트를 듣고 모인 이들이니 제작진 스스로도 자존심을 걸고 만들고 싶어 한다. 만들다보면 비판의 대상이 나의 친한 동기일 때도, 존경하는 선배일 때도 있다. 가편집본 시사에 앞서 이런저런 친분을 스치듯 얘기해도 팀원들의 표정이 상하는 것을 느껴 조심하게 된다.

나는 최근 ‘외국인 셰프, 연예인들이 하루만 열었다 사라지는 마법 같은 식당’이라는 콘셉트의 파일럿 <신기루식당>(목요일 밤 10시5분)을 만들어 방송을 앞두고 있다. <탐나는 TV>에서 함께 일하는 PD들과 작가들은 해당 프로그램을 다루는 코너의 경우 패널 선택에서 나를 배제하고 녹화 때도 자리를 비울 것을 요구했다. 또 가편집 시사 때도 빠지고, 프로그램의 하자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최종 시사만 할 것을 요구해 모두 수용했다. 자신이 만드는 비평 프로그램의 도마에 신작을 올린다니 심란하다.

나는 1년간 뜻하지 않은 진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뜻하지 않은 평화를 느꼈던 것 같다. 모두에게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선 끝까지 외로워야 하는 상황을 겪어보니, 외로울수록 나는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며 안도하게 된다. 오히려 조금 덜 외로워 보자고 움직이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세속적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균형과 질서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을 실감한다. 저널리즘, 비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하는 사람들은 ‘인싸’를 포기하는 게 숙명인 것 같다. 언론이라는 게 존재감을 얻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존재감이 사라지곤 하니 말이다. 조직 안에서, 또 개인끼리 서로 너무 위하고 끈끈한 게 문제인 우리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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