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 노동자 문제의 핵심은 성차별

2019.09.29 20:52 입력 2019.09.29 20:55 수정

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만약 어느 날 남자가 월경을 하고 여자는 하지 않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스타이넘은 ‘만일 그렇게 된다면 분명 월경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며, 지체 높은 정치가들의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는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것’이라고 했다.

[NGO 발언대]톨게이트 노동자 문제의 핵심은 성차별

나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서 그녀와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만일 이들이 남성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지난한 싸움의 시작은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한국도로공사가 만들어질 때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는 직접고용 형태였다. 유료도로를 만들었으니 요금수납은 필수이자 핵심 업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구조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고 도로공사는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수납업무를 외주용역으로 전환하고, 퇴직자와 퇴직 예정자를 350여개 톨게이트 영업소의 용역업체 사장으로 배치했다. 구조조정은 했으나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본부장’이던 사람이 ‘사장’으로 직함만 바뀌었을 뿐 그도, 톨게이트 노동자도 어제 하던 일을 똑같이 했다. 이는 톨게이트 노동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대법원 판결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업소 용역업체 사장들은 도로공사만을 상대로 영업했고 특별한 자본 투자나 영업상 위험을 부담하지도 않았으며, 도로공사가 하라는 대로 노동자들에게 일하게 하고 임금을 지급하기만 하면 일정한 이윤을 보장받았다. 명목상 변화일 뿐이다.

반면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었다. 만일 이들이 남성이었다면 외주용역의 대상이 되었을까?

IMF 구조조정 시기, 가장 강력히 작동한 게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였다. 당시 유행한 ‘아빠 힘내세요’ 노래가 상징하듯 남성 가장의 기를 살리는 게 중요했다. 남성 가장을 위해 여성들은 가장 먼저 해고 대상이 되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남성에게 안정적 수입원을 보장해 주고자 했다. 언젠가는 가장이 될 것이기에 지금 당장 가장일 필요는 없었다. 반면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해 살면 되기 때문에 안정적 일자리도, 생계를 위한 임금도 필요하지 않았다. 여성의 노동권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여성이 실질적인 가장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도로공사에서 딱 맞는 구조조정 대상은 어디였을까? 여성들이 가장 많은 곳, 톨게이트 노동자. 그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이 부당한 차별을 인정할 수 없었던 여성노동자들은 2013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시작했다. 6년이 넘는 지난한 투쟁을 통해 드디어 지난 8월29일 대법원의 승소 판단을 이끌었다. ‘남성=부양자, 여성=피부양자’ 위계를 두던 시대는 갔다. 현실도 변했고 인식도 변했다. 90일을 넘긴 캐노피 위에서의 투쟁, 20일 이상 본사 농성을 하고 있는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이 변화의 산 증거다. ‘우리가 옳다.’ 그들의 슬로건이다. 맞다. 그들이 옳다. 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여성노동의 역사, 성평등의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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