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2019.10.27 20:59 입력 2019.10.27 21:01 수정

사회보장법에 따르면 사회보장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실업,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질병, 장애, 노령, 실업 등을 사회적 위험으로 정의한 것은 그로 인해 겪게 될 사회경제적 차별이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개인에게 떠넘긴다. 1촌의 직계혈족과 배우자의 소득에 따라 부양의무를 지는 것이 복지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도 100대 국정과제로 폐지를 약속했지만 작년 10월 주거급여만 기준이 폐지되고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기준이 완화되었을 뿐이다. 사회적 합의와 단계를 핑계 삼는 사이 지난여름 서울 관악구 한부모 가정의 탈북여성과 장애가 있는 아들이 아사했다. 9월에 강서구에선 80대 어머니와 50대 장애인 아들이 동생에 의해 살해됐다. 관악구의 탈북여성에겐 부양의무자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중국에서 이혼한 남편과의 이혼확인서를 요구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능력평가 등 제도는 문턱을 낮추는 대신 장벽을 높여 왔다.

[NGO 발언대]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가족 살해와 자살이라는 사회적 타살 사건을 중심으로 언론은 보도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모욕은 깊고 다양하다.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박탈당할까 봐 자신의 삶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일상에 익숙해져야 한다. 방송대학교에 입학한 한 장애여성은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돈이 있으면 수급자격을 박탈당한다’는 소문을 듣고 1개월 만에 자퇴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사실 확인을 해볼까 했지만 가족 전체의 금융정보가 조회되면 긁어 부스럼 만들까 봐 ‘알아서’ 그만뒀다고 한다. 그는 “내가 일해서 수입이 생겨도 오히려 겁이 나니 나 스스로 능력이 없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국가가 늘 감시하고 의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자조한다. 가난한 사람, 장애인은 의존적 존재라는 낙인을 스스로 수용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문화다. 의심이 증명을 부르고, 가난하다는 증명은 결국 낙인이 된다.

다른 장애여성은 끝까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용직 노동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가 끝까지 거부하고 싶었던 것은 수급자격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이 아니었을까? 수급자인 지금 그는 “자존심이 상하지. 내가 돈을 못 벌지만 무능한 것 같진 않은데, 수급자가 된 이후엔 나뿐만 아니라 친구와 가족들 모두 수급자라는 것만을 중심으로 관계가 설명되니 정말 이상하지?”라고 반문한다. 삶의 반경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수급자격 유지를 위해선 사회적 일과 삶은 비가시화해야 했다.

부양의무를 가족에게 지게 할 때, 서로 의존하며 돌보는 공동체의 가치는 오히려 무너진다. 자식에게 폐가 될까 봐 무연고의 삶에 서게 된다. 불평등의 양극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부양의무자를 찾기 위해 서류를 뒤지지 말고 빈곤의 사각지대를 샅샅이 찾아야 한다.

가난하며 또한 사람을 만나고 또한 일을 하며 또한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우리들의 기지개’ 농성을 청와대 앞에서 시작했다. “나는 가난하지만 차별과 멸시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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