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불편한 지식인들

2019.11.04 20:45 입력 2019.11.04 20:46 수정

높은 언덕 위 아크로폴리스에서 국정을 돌보는 높은 분들이 저 멀리 시장 한가운데 넓은 공간을 보며 저마다 입장에 따라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옅은 미소를 띠기도 한다. 그곳 아고라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회와 정치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플라톤은 아고라에 모인 시민들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어디서 이상한 소문만 듣고는 다소 까칠한 지식인을 탄핵하기도 하는 등 불세출의 철학자가 보기에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했다. 반면에 이웃 스파르타는 혹독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과두정을 펼치고 정예군을 형성하여 그리스의 패권을 잡았다. 플라톤은 이처럼 우중(愚衆)에 좌우되지 않는 철인(哲人)의 정치가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그저 이상론이었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세상읽기]광장이 불편한 지식인들

시작부터 민주주의와 함께했지만, 광장만으로 민주주의가 달성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초이자 마땅히 활용돼야 할 중요한 언로이다. 온라인이 아무리 활성화되어도 직접 사람들을 만나 나누는 대화와 토론의 효용이 줄지는 않는다. 지식인들은 광장의 메시지가 항상 옳은 건 아니라고 비판하지만 똑같은 비판을 지식인들에게도 돌려줄 수 있다.

최근 오랜만에 많은 시민을 끌어모은 광장에 대해 여러 지식인이 저마다의 소회와 평가를 내놓고 있다. 어떤 분들은 민심이 쪼개진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광화문이든 서초동이든 다양한 생각을 지닌 시민들이 모여 있고, 그래서 다양한 생각이 광장을 매개로 다층적으로 드러나면서 근본적 반목과 균열이 예방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제법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를 향해 보수논객들은 대의제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에서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논리는 자신의 입지를 약화시킨다며 주민자치의 확대를 반대하는 기초의원들의 태도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이는 투표가 국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니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주장이다.

최근에는 좀 더 정교하게 광장을 비판하는 양상도 보인다. 광장이 민주주의 구현의 장이 되려면 다양한 생각이 모여 합의를 이끌어가는 숙의의 형태를 띠어야 하는데 현재의 광장은 다분히 특정 정파의 목소리만 내고 있으니 직접민주주의의 발현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은 곰곰이 되새겨볼 만한 비판일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와 달리 현장에 가보면, 심지어 광화문에서도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접하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광장이 정파적이라는 데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간혹 광장에 있었던 수백만명 중 한 사람으로서 납득하기 어렵고, 조금 불쾌한 비판도 들린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극단적 유튜버나 종편이 퍼뜨리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에 기대어 광장에 모였다는 주장이나, 이런 군중은 훌리건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 등이다. 조금 점잖게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당정치라고 타이르기도 한다. 광장민주주의 역사가 2000년도 더 넘게 흘렀지만 지식인들의 광장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여전하니 그저 씁쓸할 뿐이다. 광장에서 만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뚜렷한 자신의 생각과 감탄할 만한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이러한 생각을 모아 어떻게 합의를 이룰 것인가이다. 그 답이 광장에 모여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투표일이나 기다리라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해도 조심스러웠으면 좋겠다. 어리석은 백성은 국사를 논하지 말라는 높으신 양반의 으름장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작은 촌락으로 전락한 스파르타와 달리 여전히 반짝거리는 아테네, 그리고 헌법이 애써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가 뜻하는 바를, 화려한 지식에 앞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식인으로서 현재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책무이겠지만, 광장에 나가 사람을 만나 직접 말하고 듣는 것도 학문과 사회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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