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활동에 대한 ‘인정과 존중’

2019.12.02 20:53 입력 2019.12.02 20:55 수정

오전 5시.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아이의 아침, 도시락, 준비물 등을 챙겨야 한다. 쉽게 이부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여 깨우고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난 뒤 밀린 집안일을 부리나케 끝내고 9시 즈음 집을 나선다. 도서관까지 걸으며 다음주 그림책축제 참석자 섭외, 도서관 업무협의, 아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등으로 통화를 멈출 새가 없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도서관 운영회의를 해야 한다.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보조금사업의 정산과 다음달부터 3개월간 진행할 3기 교육프로그램의 기획안 작성이 급하다. 3개월 뒤에 도서관 임대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보증금과 월세가 많이 오를 것 같아서 걱정이다. 운영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그림책축제 진행과 관련된 점검회의를 연다. 2시간여의 회의가 끝난 뒤 곧장 구청으로 이동해야 한다. 2시 약속이라 점심 먹을 틈도 없어서 김밥으로 요기를 한다. 구청에서 도서관 지원사업과 관련된 협의를 마친 후 축제 물품을 구매하러 움직인다. 이동하면서 모레 진행할 교육강좌의 강사와 통화한다. 물품 구매가 끝나니 어느덧 오후 4시. 도서관으로 이동하며 남편에게 아이 하교를 챙겨달라 부탁한다. 곧바로 2주 후 진행할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참가자 학부모와 통화하여 상담 일정을 정했다. 구매한 물품을 도서관에 두고 바삐 집으로 이동한다. 저녁 챙겨주고 7시까지 다시 도서관으로 와서 저녁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지원사업 결산보고서 작성도 마무리해야 하고 새로운 사업의 제안서도 작성해야 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오전 2시. 잠깐 눈을 붙이고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세상읽기]마을활동에 대한 ‘인정과 존중’

마을에서 서로 배우고, 아이들을 이웃과 함께 키워보자는 일에 뛰어든 어떤 작은도서관 마을활동가의 최근 일상이다. 마을살이를 위해 들이는 하루 18시간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없다. 오히려 활동 중에 자기 지갑을 열어야 할 때가 많다. 공공지원사업을 통해 책정되는 보조금은 용처가 제한되어 있어서 활동가 개인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하니 가족의 지지가 꼭 필요하지만, 정작 우리 가정과 아이는 많이 챙기지 못한다는 현실에 오래도록 인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활동가가 지쳐간다. 헌신에 대한 사회의 인정이 절실하다. 하지만 행정과 의회는 조그만 보조금도 아깝다며 줄일 기세고 지역의 오랜 기득권인 관변단체나 주민자치위원 중 일부는 활동가들을 ‘마을좌파’라며 몰아세우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매정하기만 하다.

울리히 벡은 일찍이 마을활동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민노동에 대해 다루었다. 임노동은 경제적으로 인정받고, 가사노동은 사회적 또는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에 비해 시민들의 공익활동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인식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오래도록 세상을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 대의제, 공화주의이다. 시민노동은 대표적인 자원봉사에 해당한다. 즉 자발적인 공공봉사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나 대의제 및 공화주의는 공공영역을 넓게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다. 신자유주의는 웬만한 건 시장에 맡기라 하고 대의제와 공화주의는 자격을 갖춘 대표만 공공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상체계에서 작은도서관을 유지하기 위한 하루 18시간의 치열한 마을활동은 단지 개인활동이고 평범한 주민의 소꿉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을 각박하게 하고 사회문제를 키우는 나쁜 생각이다.

누군가는 공공영역을 애써 좁히려 하지만, 쉽게 보면 자신의 방을 나서는 순간 다른 가족과 관계를 맺는 준공공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이고, 집을 나서는 순간 타인들과 크고 작은, 직간접적 관계를 맺는 공공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임이 자명하다. 참여민주주의나 보편복지는 이런 관점을 기초로 쌓아 올릴 수 있다.

공공영역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히 국가여야 하지만, 공공행정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을활동과 같은 시민노동이 필요하다. 이를 존중하고 인정하여 세심히 지원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 있고 따뜻한 태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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