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주권시대의 새로운 정치드라마

2019.11.14 20:58 입력 2019.11.14 21:01 수정

<보좌관2>의 한 장면.  <보좌관2> 홈페이지 갈무리

<보좌관2>의 한 장면. <보좌관2> 홈페이지 갈무리

JTBC 정치드라마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하 <보좌관>)이 두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치판을 뒤흔드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보좌관>은 지난여름 tvN에서 방영된 <60일, 지정생존자>와 함께 국내 정치드라마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시민주권시대의 새로운 정치드라마

과거의 정치드라마는 주로 권력투쟁과 이상적인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였다. 예컨대 선거철마다 방영된 왕조 사극은 영웅적인 군주의 모습에 대중이 바라는 리더상을 투영하거나,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는 조정의 모습을 통해 현실 속의 이기적인 정치인들을 풍자하곤 했다.

현대극에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SBS <시티홀>이나 <대물> 같은 드라마들은 탐욕스러운 권력에 물들지 않은 깨끗하고 정의로운 리더상을 제시한 판타지 장르에 가까웠다.

<보좌관>과 <60일, 지정 생존자>는 이 같은 기존 정치드라마의 공식을 벗어난다. 두 작품 속에서 정치는 부패한 권력층과 이상적인 주인공의 선악 대결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던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토론과 합의를 통해 현실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가령 <60일, 지정 생존자>의 주인공 박무진(지진희)은 영웅적 리더상이라기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시민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대통령 권한대행직에 오른 박무진에게 “권력을 행사하려 하지 말고 시민의 책무를 다하라”고 말한 청와대 비서실장의 대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 말대로 박무진은 위기 상황마다 민주시민의 한 일원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참모들의 의견을 수렴해 답을 찾아나간다.

<보좌관>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국정감사의 증인 채택이나 상임위원회 구성 등을 둘러싼 치열한 갈등처럼 현실정치의 작동 원리 안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과정에서 천재적인 지략을 지닌 주인공 장태준(이정재)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또 다른 인물들 간 공조와 합의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게 그려진다. 유리천장에 도전하는 여성 정치인 강선영(신민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의에 집중하는 젊은 보좌관 한도경(김동준),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추구하는 보좌관 이지은(박효주) 등 다양한 신념을 지닌 인물들이 결국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뜻을 모으고 현실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이 <보좌관>이 추구하는 정치의 모습이다.

<60일, 지정생존자>와 <보좌관>의 새로운 경향은 정치가 더 이상 특정 권력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들 일상의 영역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밀실정치를 종식시킨 촛불혁명은 그러한 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박무진이 한 소녀로부터 촛불을 건네받는 상징적 장면처럼, 정치드라마의 새 경향은 촛불혁명 이후의 시민주권시대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얼마 전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정치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약 59%가 “예전에 비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시대정신은 두 드라마가 힘을 싣는 정책 입안 에피소드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권한대행직에 오른 박무진이 첫 번째 권한을 행사한 이슈가 탈북민 차별금지였고, 그의 청와대 정신을 대표하는 대변인이 탈북자 출신인 데서도 알 수 있듯, 드라마는 초반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해 차근차근 복선을 쌓아나갔다. 성소수자 감독의 커밍아웃 사건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쟁점에 오른 차별금지법 에피소드에서 박무진의 강력한 대사는 이 드라마의 최종적인 지향점을 환기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평등권이 아닌가요? 내가 뭘 더 고려해야 합니까.” 드라마는 마지막회에서 박무진의 차기 대선 출마와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남겨둔다.

그런가 하면 <보좌관>에서는 노동환경 개선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대두된다. 시즌1의 첫 에피소드에서부터 부강전자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루며 노동환경개선법 발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드라마는 정의로운 정치인 이성민 의원(정진영)을 통해 이를 추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시즌1 후반부에서 이성민 의원은 비록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인 퇴장을 했지만, 그의 마지막 법안은 시즌2에서 강선영 의원실과 장태준 의원실의 공조로 다시 힘을 얻게 된다.

<60일, 지정생존자>의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러했듯이, 노동환경개선법 통과 역시 많은 장애에 부딪히지만, 현실정치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중요한 경청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 과정 또한 역사”라 이야기하는 <60일, 지정생존자>의 대사처럼 적어도 드라마 속에서만큼은 정치는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현실정치는 새로운 정치드라마들이 던진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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