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같은 류현진과 린드블럼

2019.11.18 20:54 입력 2019.11.18 20:55 수정

[정운찬 칼럼]데칼코마니 같은 류현진과 린드블럼

종이 위에 물감을 바른 뒤 두 겹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그 위에 두고 눌렀다 떼어내는 방식의 미술 기법을 ‘데칼코마니’라고 한다. 올 시즌 미국과 한국 프로야구에서 데칼코마니 한 듯 각각 닮은꼴 활약을 펼친 두 ‘외국인’ 투수가 있다. LA 다저스의 류현진과 두산 베어스의 조쉬 린드블럼이 그 주인공이다. 1987년생 동갑내기로 각각 MLB와 KBO리그 최고 수준의 성적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두 선수는 MLB, KBO 올스타전 선발 등판과, MLB 사이영상(Cy Young Award) 후보, KBO MVP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평행이론을 펼치며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정운찬 칼럼]데칼코마니 같은 류현진과 린드블럼

류현진은 올 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 커쇼를 대신하여 선발로 나선 이후 29경기에 등판해 14승5패에 평균자책점(ERA) 2.32를 기록, 아시아 투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ERA 1위에 올랐다. 특히 5월12일에는 2019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8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전반기 17경기 10승2패 ERA 1.73, 99탈삼진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동양인 2번째이자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2013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82.2이닝을 소화한 류현진은 체력에 대한 우려도 말끔히 씻어냈다. 최근에는 한국인 최초로 뉴욕 메츠의 디그롬, 워싱턴 내셔널스의 셔저와 함께 미국야구기자협회가 발표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최종 후보 3인에 들어갔다.

KBO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평가받았던 더스틴 니퍼트를 이어 슈퍼 에이스 역할을 해내고 있는 두산 린드블럼은 올 시즌 30경기에 등판해 20승을 거두면서 다승, 승률, 탈삼진 부문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ERA도 선두를 달리다 시즌 막바지 2위로 밀린 점을 고려하면 니퍼트도 못한 투수 부문 4관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는 1999년 현대 정민태 이후 20년 만에 KBO리그 개막 후 7월까지 16승 이상을 올리는 대기록을 달성했으며 8월18일 잠실에서는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롯데 주형광이 세웠던 15연승을 제치고 홈경기 최다 연승 신기록(16승)을 세웠다.

오늘이 있기까지 두 선수는 야구로 많은 것들을 극복했다.

2006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번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류현진은 데뷔 첫해부터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을 거두며 2012년까지 통산 98승으로 시즌을 마감한 뒤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처음 2년간 28승15패, ERA 3.17을 기록하며 활약했던 류현진에게 팬들의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그는 2015년과 2016년 두 번의 어깨 수술로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나 재활 기간 새로운 구종을 연마하고 제구력을 키우며 성장했다.

2008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린드블럼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 여러 구단을 거친 후 2015년 롯데자이언츠 외국인 투수로 한국 팬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적 첫 시즌 210이닝으로 KBO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린드블럼은 2016년 시즌 종료 후 아픈 딸을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복귀했다가 2017년 중반 다시 롯데로 돌아왔다. 2015~2017 3년간 74경기에 등판해 28승을 올렸다. 2018년부터는 두산으로 둥지를 옮겨 니퍼트가 떠난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며 리그 유일한 2점대 ERA로 외국인 최초로 최동원상을 수상하고 팀의 2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과 2019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두 선수의 마운드 밖 생활도 화제다. 지난 5월 ‘크랙 캔서 챌린지’(Crack cancer challenge, 소아암 돕기 행사)에 참여한 류현진의 소식이 전해졌다. 린드블럼 또한 2011년 10월 아내와 함께 ‘린드블럼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선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스포츠에는 국경이 없어지고 있다. 글로벌화에 따라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영입에 적극 참여하면서 자국 선수들의 해외 이적도 증가했다. 그들은 타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수한 기록을 쌓으며 리그의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스포츠 문화를 전파하고 국가 브랜드의 위상을 제고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메릴 켈리는 프로 지명을 받은 2010년부터 4년간 마이너리그에서만 뛰었지만, SK와이번스로 이적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119경기에 등판해 48승을 올렸다. 또 2017년 탈삼진 189개로 1위, 2018 한국시리즈 우승 등 KBO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재도전에 성공했다. 2015년 KBO MVP였던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도 2014년부터 3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2015년에는 타율(0.381), 득점(130), 2루타(42), 장타율(0.790) 부문에서 1위를 석권하고 2017년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로 유턴, 31홈런으로 활약했다. 또한 미국 복귀 이후 뛰어난 가창력을 겨루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실이 MLB.com에 소개되며 한국과 미국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3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와 탬파베이 레이스의 최지만도 풀타임 선전하며 한국 야구를 빛내고 있다.

데칼코마니는 우연하고 다양한 효과들을 끌어낸다. 스포츠 국제 교류에 대한 기대가 바로 이 데칼코마니 같다. MLB 구단 스카우트들이 KBO 구장을 방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올해 7월9일 등판을 마치고 다음날 SNS에 올린 글에서 자신과는 직접 인연이 없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 등판을 응원하기도 했다. 닮은꼴 활약을 펼치는 류현진, 린드블럼은 물론 추신수, 최지만, 켈리, 테임즈 등과 같이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긍정적 교류를 통해 한·미 양국 리그에 모범이 될 족적을 남기고 야구라는 공통분모의 경기적, 문화적 동반성장을 이끌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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