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와 미세먼지

2019.12.05 20:38 입력 2019.12.05 20:44 수정

한번 터 잡은 마을에 대대로 살아가는 농경사회에서 살기 좋은 땅, ‘명당’을 차지하려는 욕망은 누구나 강했다.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영화적 상상이 화성 이주를 시도하는 우주시대에도 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을 발휘하는 이유일 것이다. 부귀의 땅을 찾는다는 단편적 의미로 변질되어 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이 높아졌지만, 풍수지리(風水地理)는 현대학문인 생태학(風水)과 지리학(地理)이 결합한 융·복합과학이라 할 수 있다. ‘왕을 만드는’ 땅에 대한 탐욕이 아닌 ‘사람 살리는 땅’으로 풍수를 바라볼 때 이 경험과학에 기초한 심층생태학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녹색세상]풍수지리와 미세먼지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로 바람을 피하고 물을 얻는 즉, 삶의 터전에서 최우선으로 피할 것과 얻을 것을 조합한 이름이다. 사계절이 반복되는 우리나라에서 과거 농사를 지으며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 가지는 기근과 혹한이다. 이 기근을 막을 ‘물을 얻는 곳’과 혹한을 견딜 ‘바람을 막는 곳’, 바로 배산임수와 좌청룡우백호라는 말로 함축되는 땅이 바로 명당인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화를 면하고 조금이나마 평안하게 살기 위한 곳을 안내하는 지침으로, ‘잘되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지 말자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적 장소는 그리 많지 않고 보통 어딘가는 부족하기 마련이다. 물이 모이는 곳은 필히 빠져나가는 곳이 있기에 대체로 바람막이가 취약한 방향이 생기게 된다. 이 부족의 보완이 풍수의 비보(裨補)로, 보통 찬바람을 막아줄 숲을 마을 외곽에 조성하게 된다. 마을숲은 외부의 찬바람을 막고 마을 안의 온기를 유지하는 곳으로, 모두를 위해 잘 보호되어야 했기에, 많은 전래동화의 소재가 된 토테미즘적 숭배사상이 생겨난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던 경험과학은 이제 생존이 아닌, 더 잘 살기 위한 선택으로 바뀌었고 비과학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 전통지식을 밀어낸 일등공신은 단연 미세먼지의 주범인 화석연료이다. 문제는 여기서 나타난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지역은 분지형 도시 즉, 바람을 잘 막는 곳이다. 보통 미세먼지 농도는 발생량이 월등히 높은 서울과 경기가 높아야 하는데, 백두대간이 가로막은 강원도 영서지방 소도시들이 자체발생 미세먼지가 적음에도 농도가 높은 날이 많은 이유다. 내부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을 가두는 것에 더해, 서쪽에서 불어온 외부 오염물질까지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기에 그렇다.

이제 겨울의 공포는 북풍한파가 아니라 미세먼지가 된 지 오래고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은 모두를 전문가로 만들 정도다. 그리고 설익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도심에 숲을 조성하고 외곽 숲을 간벌하여 밀도를 낮추는 것이다. 오랫동안 외부의 바람을 막고자 숲을 조성해 왔는데 이제 반대로 숲을 조성해 미세먼지를 내보낸다? 숲은 추울 때는 바람을 막고, 미세먼지가 많을 때는 바람을 불게 하는 ‘신박한’ 능력을 지닌 것일까? 안타깝게도 추울 때 미세먼지 농도가 덩달아 높다. 과거 땔감의 채취는 숲의 밀도를 낮췄고, 밀도가 낮아진 숲은 바람을 더 잘 막아왔다. 도심 주변의 숲은 더 이상 연료공급원이 아니니 밀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레 바람이동이 빨라지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숲의 밀도를 낮추는 간벌작업을 미세먼지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밀도가 낮은 숲을 도심에 만들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환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작업을 미세먼지 저감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하늘을 보며 남 탓하기 바쁜 계절이다. 비록 3분의 1이 중국발이라 하지만, 역으로 3분의 2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분지에서 미세먼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외부의 깨끗한 바람을 얻는, 장풍득수(藏風得水)가 아닌 득풍득수(得風得水)를 위한 도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줄 단기 방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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