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공시자료 많이 내는 미국 기업

2019.12.31 19:53 입력 2019.12.31 19:56 수정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 새해를 맞이했다. 회사 역시 지난 한 해의 성과를 결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회사의 지난해 성적표와 신년 계획들을 공시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공시자료들은 해당 기업에 투자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자 혹은 잠재적 투자자를 포함한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기업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들을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그 내용과 형식을 법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경제와 세상]부정적 공시자료 많이 내는 미국 기업

이처럼 기업들의 공시 내용을 법적으로 철저히 관리하는 이유는, 대다수 기업이 회사의 경영 상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 공개를 꺼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객관적이고 정밀한 정보가 공개될 경우, 자신의 경영 활동을 스스로 옥죄는 유인으로 작용하는 까닭에서다. 예를 들어, 다음 연도 매출 목표치를 구체적 수치로 제공할 경우, 해당 자료가 차후에 자신의 경영 성과 평가 과정에서 커다란 무게감으로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다. 또한 제품 원가 내지 판매관리 부문의 세부적 정보를 제공할 경우, 주주 내지 잠정적인 투자자들로부터 경영 효율화 내지 합리화에 대한 세세한 지적을 받게 될 수 있다. 즉 경영자 입장에서는 공시 자료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많은 시어머니를 두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법에서 요구하는 수준만을 준수하여 공시하고 있거나, 심지어 법에서 요구하는 사항들도 가능하면 은폐하거나 축소하여 공개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공시자료와 미국의 공시자료를 비교해 봤다면, 이들 두 국가의 기업 공시자료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술돼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공시를 통해 주로 자사의 긍정적인 소식들을 전달한다. 하지만 미국 기업들의 경우에는 공시가 해당 회사의 부정적인 소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다. 미국 기업들이 지난 30년간 자발적으로 공시를 통해 부정적 소식을 전달하는 비중을 꾸준히 늘려왔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도 1970~1980년대에는 자신들의 우호적인 소식들을 주로 공시를 통해 전달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점차 부정적인 내용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1990년대에는 오히려 긍정적인 내용보다 부정적인 내용의 비중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미국 기업들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부정적 공시 비중을 늘린 가장 직접적인 배경엔 강력한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실을 즉시 투자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이 제기하는 대규모 집단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미국 투자자들의 경우 회사 실적 예측치로 공시된 내용과 실제 달성한 성과가 일정 수준 이상 편차를 보일 경우에도 여지없이 집단소송을 건다. 기업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예측치를 과대 표현했거나 중간에 실적 예측치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공시하지 않은 데 대한 소송인 것이다. 투자자뿐만 아니라 미국의 변호사들은 대규모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특정 회사의 공시자료들을 항상 관찰하고 있다. 특정 회사의 공시 내용이 모호하거나 과장되어 있다고 판단될 경우, TV나 신문 지면 광고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집단소송을 독려하는 추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기업의 경영진 역시 이러한 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다각적인 자구 노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공시 내용이 보다 빈번히 발표되는 형태로 이어졌다. 또한 투자자들 중에서 공시 내용에 대해 추가적인 문의 등을 하고 싶을 경우 어떤 경로로 어디에 문의하면 되는지 등에 대해 함께 병기하는 사례도 많다.

이에 반해 국내 기업들은 공시를 상대적으로 투자 관련 긍정적인 정보들을 제공하는 기회로 삼고 있는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사항을 공시할 때도 관련 정보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향후 후속 조치 내지 관련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세부 경로를 함께 제시하지 않는다. ‘향후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완 중’이라든가 ‘향후 관련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상 절차를 실시할 예정’ 등과 같은 추상적인 문구들만 제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020년 새해 역시 국내외 경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곧이어 발표될 국내 주요 기업들의 공시 내용들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은 듯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공시자료의 신뢰성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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