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정책, 새로운 논쟁 필요

2020.01.07 20:45 입력 2020.01.07 20:46 수정

통화정책이 거시경제정책을 주도하던 시대는 사실상 끝난 듯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급한 불을 일단 끌 수 있었다. 지금 세계경제 둔화로 완화적 통화정책이 필요하지만,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0% 수준이고 영국도 0.75% 수준이어서 통화정책으로 적극적 경기대응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 인하가 경기 활성화 효과를 내려면 2~4%포인트 정도 연속적으로 확실하게 하락시켜야 하지만 이 정도 통화정책 여력을 확보하고 있는 선진국은 이제 없다.

[경제와 세상]거시경제정책, 새로운 논쟁 필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 정책으로 본원통화가 크게 증가했지만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가 케인스주의를 몰아세우던 시대와는 양상이 정반대다. 저성장·저물가·초저금리는 이제 뉴노멀이 됐지만 극복해야 할 뉴노멀이다. 과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던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확장 재정정책을 권고하는 것은 이런 시대 변화 때문이다.

양적 완화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 않았지만 금융자산 가격을 상승시켰고, 금융자산 부자와 금융위기의 책임이 있는 금융회사가 큰 이익을 봤다. 과거에 재정정책은 조세와 재분배를 통해 시장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반면 통화정책은 은행을 신용 확산 전달 매개로 삼기에 자원배분을 왜곡하지 않고 시장 중립적이라 평가받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정책은 실물경제 활성화와 불평등 완화 효과가 뚜렷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통화정책은 자산 불평등 확대란 시장 왜곡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양적 완화로 유동성이 전 세계적으로 풍부해지면서 세계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켜 무주택자 주거비용 상승과 자산 불평등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주택은 고소득층이 과시 소비를 하는 대표적인 지위재(positional goods)다. 지금처럼 불평등이 심각했던 20세기 초 미국을 도금시대라고 불렀는데, 당시 미국 최고 부자들이 뉴욕 롱아일랜드 지역 초호화 주택 앞면을 금칠하는 과시 소비에서 비롯했다. 소득 불평등이 클수록 고급 주택 투자가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 고소득층이 학군도 좋고 지위재 역할을 하는 고급 주택가 부동산에 집중 투자를 하면 과시 소비 효과는 물론이고 높은 투자 수익도 얻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소득 불평등 심화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지위재와 투자재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부동산 거품에서 시작한 것이기에 미국,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선진국들은 주택 관련 대출 규제를 강화해 가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정체 내지 하락했다. 그러나 한국은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과 저금리로 가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급등했고 그 수준도 다른 선진국의 1.5~2배로 월등히 높다. 현 정부 들어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둔화됐지만 전세 부채까지 포함하면 가계부채 위험은 공식 통계보다 심각하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는 금융안정도 고려해야 하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여력을 더욱 축소시켰다. 기준금리 인하든 양적 완화든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양적 완화를 검토한다면 새로운 방식이어야 한다. 한국은행법 제75조는 국채 직접 인수를 허용한다. 양적 완화에 의한 본원통화 증가가 공공투자와 사회복지 재정지출 확대로 연결되면 재정승수효과만큼 실물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다. 더욱이 한은 순이익금의 30%는 내부 적립하고 나머지는 국고에 납입하므로 국채이자 부담도 준다.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증가율은 2018년 4분기 이후 계속 마이너스로 인플레이션이 필요한 시기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공조하는 거시경제정책도 타성에서 벗어나 정책 혁신을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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