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된 죽음과 무감각

2020.02.25 21:12

내가 사는 지역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 종종 만나는 고등학생한테 문자를 했다. 열흘 전 동네에서 만난 그는 친구 집에 간다면서 큰 가방을 걸머메고 있었다. 가방에는 미용 가운과 가발이 들어 있었다. 특성화고 뷰티학과에 다니는 그는 겨우내 미용 시험을 준비하느라 미용학원에 다녔는데, 학원에 못 가는 친구한테 과외 수업을 하러 간다고 했다.

“저도 실기 시험 본 거 떨어질지 모르는데, 누굴 가르쳐 준다는 게 우습죠.”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일상화된 죽음과 무감각

그는 수줍게 웃으면서 과외비도 받는다고 했다. 얼마나 받느냐고 묻자 아이는 친구가 저녁을 해준다면서 중학교 때부터 자취하는 친구가 라면은 잘 끓인다고 했다. 그는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친구 집에 갈 테니 나는 시청에서 온 안내 문자를 그에게 전달하면서 꼭 마스크를 하고 다니라고, 웬만하면 집에 있으라고 일렀다. 그러고는 어서 세상이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문자를 보내고 아차 싶었다.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은 평화로운 것인가. 그저 인사로 허투루 한 말이었지만, 내내 마음에 걸렸다. 특성화고등학교 실습생들이 열악한 환경에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를 들을 적마다 마음이 아프다던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생각났다. 한 해 동안 산재로 죽은 노동자가 2142명, 언제든 죽음을 맞닥뜨릴 수 있는 노동 환경에 내몰린 실습생이나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바이러스 감염 사망자 수가 늘어가는 것은 하루하루 두려움을 갖고 지켜보지만, 하루에 6명꼴로 죽어가는 산재 사망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일상화된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죽음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우리가 노동자의 죽음을 지금처럼 두려움을 갖고 바라본다면,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안전한 세상에서 일하게 한다면, 비로소 세상의 평화는 좀 가까워지지 않을까. 바이러스는 언젠가 끝나겠지만, 노동은 계속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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