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2차산업의 재발견

2020.04.02 20:46 입력 2020.04.02 20:53 수정

EU 회원국 외교관과 오랜만에 만났다. 예정되어 있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지만 본국에 한국의 상황과 대응에 대한 보고를 하느라 정신이 없단다. 국경 봉쇄, 입국 금지, 인도적 지원 등 나라별 코로나19 대응에 따라 외교관계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 불확실성의 연속이라고 했다. 한국처럼 초기부터 증상자 전원을 대상으로 진단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확진자가 집중된 도시를 봉쇄하지 않고 시민 각자가 도시 간 이동을 자제하는 자발성에 감동했다고,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은 점도 놀랍다고 했다.

[세상읽기]마스크와 2차산업의 재발견

대부분의 사안에서 의견이 같았는데 마스크에서 달랐다. 많은 전문가가 마스크가 코로나19 예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며 자국에서도 아픈 사람이 아니면 쓸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단다. 유럽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병에 걸린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감염 경로가 침방울인데 마스크 착용이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들도 마스크가 침방울을 막는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코로나19는 잠복기 증상이 가벼워 걸린 줄 모르고 돌아다니다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도 있으니 마스크는 타인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답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마스크 쓰기를 권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일상인 한국엔 수백개의 생산업체가 있지만 유럽엔 생산시설 자체가 없는 곳이 많다. 한국처럼 비교적 마스크 공급이 안정적인 곳에서도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는데 구하기도 어려운 곳에서 마스크 착용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간 혼란을 넘어 마스크를 향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곳곳에서 품귀현상이 일어나 정작 필요한 의료현장에 공급하기 어렵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산업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유럽은 이미 고부가가치 고차 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재편해 막상 제조시설이 없는 곳이 많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스웨덴 약국에 해열제 등 비상약이 씨가 말랐다. 스웨덴에는 굴지의 제약회사가 있지만 공장이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명품 그룹사 루이뷔통모에헤네시는 향수 공장을 재빠르게 손소독제 생산라인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마스크는 중국 공장에 의존해야 했다. 그나마 제조사가 본국에 있는 독일의 폭스바겐은 자동차를 만들 때 사용하는 3D 프린터로 인공호흡기를 제작하고 미국의 랠프로런은 생산라인을 바꿔 마스크와 의료용 가운 공급에 나섰다.

고차 산업을 지향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 여겼는데 각 나라 상황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은 1차부터 4차까지 단계별 산업이 공존하고 있다. 위기상황에서 각각의 산업은 나름의 역할을 한다. 4차산업 덕에 마스크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고, 3차산업 덕에 나가지 않고도 배송을 받을 수 있다. 2차산업이 있어 마스크 수급이 원활하다. 더 큰 위기가 닥친다면 1차산업이 가장 중요해질 것이다. BBC는 최근 코로나19로 흔들리기 시작한 식량 주권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나면 앞으로 더한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무엇이 우선 필요할지, 최악의 경우 일정 기간 나라 전체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어떤 자원과 제조업을 전략적으로 가져갈지 산업의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스웨덴 뉴스를 보는데 기후변화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기온이 0.5도씩 상승할 때마다 경작지가 얼마나 늘고 그로 인한 식량 생산량이 얼마나 증가하는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있었다. 스웨덴은 기후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나라인데도 플랜B를 준비하는 게 인상 깊었다. 대한민국도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예측과 복안을 갖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기획재정부는 다 계획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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