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2020.03.30 20:54 입력 2020.03.30 21:04 수정

“나는 위생 개선이 그 어떤 사회적 조치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청결과 (위생)예절이 먼저 확립되지 않는다면, 교육과 종교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세상읽기]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1851년, 찰스 디킨스가 런던 보건국 홍보 연설에서 한 말이다. 당시 런던은 그리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5세 이하 어린아이 절반이 감염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관심이 없었다. 어린이는 으레 ‘소아병’에 걸리는 법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는 더럽고 비좁아졌고, 아이들이 쏟아져나왔다. 어린이는 매일 12시간을 공장에서 일했다. 13세 디킨스도 주급 6실링을 받고 구두약 공장에서 온종일 일해야 했다.

형편이 좀 나은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장의 규율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수백명의 학생이 좁은 곳에서 수업을 받았고, 모진 체벌을 받았다. 19세기 초에야 교사가 학생을 때려죽일 수 없다는 법이 통과되었다. 공장을 따라 교실의 창문을 없앴다. 햇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려 팔다리가 휘어졌다. 당시 18세 청소년의 평균 신장은 152㎝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난한 이를 위한 일자리는 주로 도시에 있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공장 혹은 공장형 학교 중 하나를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항아리손님(유행성 이하선염)이 찾아오고 호열자(콜레라)가 도시를 덮쳐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일부 부유층만이 냄새나고 답답한 도시를 떠나 교외로 향했다. 햇빛이 드는 가정에서 공부하고, 숲과 들판에서 뛰놀 수 있는 어린이는 많지 않았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매일매일 출석하여 책상 앉기를 견뎌내는 과정은 미래의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에게 아주 중요한 훈육이다. 하지만 디킨스는 생각이 달랐다. 실질적 지식 전달이 학교의 목적이며, 사회적 순응을 위한 훈육은 부차적이라고 여겼다. 그의 소설, <어려운 시절>의 첫 문장은 이렇다. “저 아이들에게 사실만 가르치시오. 삶에서 필요한 건 오로지 사실이오. 사실에 근거할 때 비로소 이성적인 인간을 만들 수 있소. 다른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되오.”

개학 연기는 단지 물리적 거리 두기의 일환만은 아니다.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등교를 강요당한다면 산업혁명 당시 영국 어린이와 다르지 않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감염병을 무릅쓰고 출석한 학생에게 보건과 위생을 가르칠 수는 없다. 지식과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과 기만을 배울 것이다. 혹시 맞벌이 부모의 출근을 위해서라면 더 슬픈 일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도 부모는 일터로, 아이는 학교로 가야 한다면 19세기의 런던보다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디킨스는 공공 보건의 선구자였다. 위생 개선, 병원 설립, 의무적 백신 접종에 앞장섰다. 상이군인 지원과 장애아동 교육도 제안했다. 슬럼가를 개선하자며, 빈민층의 높은 사망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그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올리버 트위스트의 시대에는 어린이가 넘쳐났다. 절반이 감염병으로 죽어 나가도 세상은 무심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다. 노인이 넘쳐난다. 코로나19는 노인에게 몇 배나 더 위험하다. 하지만 사회적 관심이 몇 배나 되는 것 같진 않다. 학교는 휴교 중이라지만, 요양원은 그대로 괜찮은 것일까? 노인들이 대거 퇴소하여 가족 곁으로 돌아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인류사를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오래 산다지만, 이래서는 그 빛이 바랜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하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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