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성폭력 구조의 공범들

2020.05.03 20:44 입력 2020.05.03 20:48 수정

4월23일 오거돈 부산시장이 자신의 성폭력 범죄를 인정하며 전격 사퇴했다. 오거돈 성폭력 사건은 고위공직자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질문은 사라졌고 피해자와 지원기관에 대한 음해와 공격은 도를 넘고 있다.

[NGO 발언대]고위공직자 성폭력 구조의 공범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낙인은 피해자 개인이 겪는 고통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여성 검사는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했다. 검사인 그녀가 자신이 당한 일이 성폭력인지 몰라서 공론화하는 데 8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을까? 아니다. 그녀는 사건이 알려지는 순간 쏟아질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낙인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고 했다.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그녀와 똑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낙인이 위험한 이유는 성폭력 피해를 안전하게 드러내고 사법적 해결로 나아갈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데 있다.

특히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은 공론화하기 더욱 어렵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비례하는 2차 피해를,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쪽에서 만들어질지 모르는 정치적 음해까지 각오해야 한다.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는 예외 없이 음모론이 등장했다. 문제는 음모론이 겨냥하는 것이 피해자라는 점이다. 일견 가해자나 상대 정치세력에 대한 공격처럼 보이지만 음모론은 성폭력 피해자를 ‘진짜’와 ‘가짜’, ‘순수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로 구분하며 음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악의적인 프레임에 갇힌 피해자는 무차별적인 공격에 노출되고 피해자에 대한 공격은 정당화된다. 사건마다 정치적 이해득실의 결과는 다르지만 일관되게 강화된 것은 피해자다움의 강요와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그릇된 통념과 편견이다. 피해자는 숨게 하고 범죄는 은폐되는 성폭력의 구조는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낙인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공간에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위치하게 하는 부당한 일이 오거돈 성폭력 사건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정치공세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이 누구인지, 그것이 만드는 효과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고위공직자의 성폭력을 근절하자는 대응이 또 다른 피해자의 입을 막아 성폭력 범죄를 더욱 은폐하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누군가는 정치적 우위를 차지할지 모르지만 그것의 대가로 만들어질 미래는 정말 위험하다.

정치권과 언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성폭력 없는 세상이라면 피해자와 지원기관에 대한 음해와 공격을 멈춰야 한다. 만일 중단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피해자를 숨게 하여 범죄를 은폐하는 성폭력 구조의 공모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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