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읽고 잇는다는 것

2020.06.11 03:00 입력 2020.06.11 03:05 수정

지난 주말, 북토크 참석을 위해 제주도에 다녀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토요일과 일요일 행사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카메라와 눈 맞추는 것이 어색해서 말은 자주 엉키고 이야기의 갈피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이야기의 어귀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틈틈이 채팅창을 보고 거기에 적힌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해야 했다. 낯선 상황에 임기응변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틈을 내는 사람에서 틈을 메우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다행히 시간은 평소처럼 흘러가주었다. 끝나고 나니 왠지 모르게 괜찮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말을 제대로 못했다고 자책하거나 무사히 끝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빙긋 웃고만 있었다. 제주도여서 그랬을까? 온라인이어서 그랬을까? 공간이 바뀌고 방식이 달라지니 내가 조금 용감해진 것일까? 예상치 못한 일에 얼어붙곤 하는 나인데,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뻤다. 한 학기 동안 비대면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 게 도움이 되었다. 같은 이유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몹시 그리웠던 것 같다.

변화는 매일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강의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강연자들이 하루아침에 유튜버가 된 것처럼. 회사가 재택근무를 늘리고 각자 원하는 음식을 앞에 둔 채 온라인회식을 진행하는 것처럼. 마스크 쓴 사람을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것을 쓰지 않은 사람을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본다. 세계 여기저기에서 변화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발맞추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외출을 자제하게 되었다고 해서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이 덩달아 식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온라인강의를 확산시켰을 것이다. 재택근무의 효용이 높아서 처음부터 도입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일을 해야 하는 노사(勞使) 양측을 고려한 최선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여러 업종에서 출퇴근 근무만큼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하니, 변화를 감지하는 것만큼이나 이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단 사회에 전염병이 돌거나 정권이 바뀔 때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김지경씨가 쓴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마음산책, 2020)를 읽었다. 기자로 일하면서 뉴스 진행까지 맡게 된 그는 현장과 스튜디오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한다. 남자 앵커는 화면 왼쪽에, 여자 앵커는 화면 오른쪽에 서는 관행을 깨뜨리는 데도 성공한다. 메인 앵커가 화면 왼쪽에 서는 게 관례라면, 자신이 그 자리로 가고 싶다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중년의 남성 앵커와 젊은 여성 앵커의 조합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그동안 우리가 그런 조합만 보아왔기 때문이다. 고착된 상태가 변화를 막고 있었다.

“내가 만든 이 조그만 ‘선례’가 다음 이 길을 걸을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그래서 고민과 걱정을 덜어줄 수 있기를”이라고 고백하는 그의 문장을 보고 상념에 잠겼다. 변화를 일구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읽고 이어나가는 사람이 있다. 한번 일어난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낳을 것이다. 이야기의 어귀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할 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불씨를 지펴줘야 불씨는 불꽃이 되고 마침내 불길로 치솟을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잇되 잊으면 안 된다. 지난 정권 때 민주주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듯, 한번 바뀐 지형도에서 묵은 생각과 아집은 통용되지 않는다.

새로운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상상을 해야 한다. 힘겹게 트인 물꼬에서 시원한 물이 쏟아지고 있다. 도처에 변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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