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음악

2020.06.18 03:00 입력 2020.06.18 03:01 수정

지금 한국 대중음악에서 흑인 음악 비중은 절대적이다. 힙합은 그 자체로 과거 록이 차지하던 위상, 즉 10대와 20대 문화의 일부를 대변한다. K팝을 말할 때 힙합 비트를 빼놓을 수 없고, 음원 차트에서 강세인 발라드 음악도 솔과 리듬앤드블루스(R&B)를 근간으로 한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1980년대 후반까지는 록이 음악 애호가들의 주류 장르였다. 록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었으며 당시 빌보드에서 득세하던 솔과 R&B는 ‘연탄’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던 시절이다. 이렇게 배척받던 흑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던 곳이 이태원의 전설적인 클럽 ‘문나이트’다. 남들이 록을 들을 때 최신 서구 댄스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곳이다. 애초에 내국인이 아니라 미군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였기에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이곳 출신인 서태지와아이들이 한국어로도 자연스러운 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한국 음악의 판도를 댄스로 바꿨다. 그들은 전례없던 역동적 춤도 선보였다. 기존의 고정된 카메라로는 잡을 수 없는 그림을 만들었다. 역동적인 화면을 채울 가수들이 필요했다. 가요 기획자들은 문나이트에서 유명한 춤꾼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해서 데뷔시켰다. 현진영, 알이에프, 박진영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마치 공식처럼 랩을 쏟아냈고, 서태지와아이들이 3집 ‘컴백홈’에서 갱스터랩을 표방하면서 힙합이 가요계에 안착했다. 비슷한 시기 PC통신 천리안의 흑인 음악 동호회 ‘블렉스’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산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만든 비트에 랩을 입혀 믹스테이프를 만들고, 무선호출기 연결음에 프리스타일로 랩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한국만의 독특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문화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 중반 인디 문화를 탄생시킨 홍대앞 라이브 클럽 중 ‘마스터플랜’은 정기적으로 힙합 뮤지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며 힙합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기도 했다.

힙합이 자생적으로 자리 잡은 반면, 또 하나의 주요 트렌드인 R&B는 재미교포 출신들의 힘을 빌려야 했다. 1990년대 초반 현재 SM엔터테인먼트 이사이자 프로듀서인 유영진이 ‘그대의 향기’로 화제를 모으는 등 자체적인 시도도 있었지만 팝에서나 들었던 정통 R&B 보컬을 한국어로 소화한 이들은 미국에서 자라 한국에서 데뷔한 이들이었다. 1995년 솔리드 2집에 실린 ‘이 밤의 끝을 잡고’가 메가히트를 기록하며 정통 R&B를 한국 음악계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1998년 역시 미국 출신인 박정현이 ‘P.S. I Love You’로 성공적 데뷔를 하며 발라드의 중심이 R&B 스타일로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메가히트 넘버인 ‘벌써 1년’, 아소토 유니온의 ‘Think About’ Chu’가 2002년의 가장 큰 히트곡들로 자리하며 주류 음악에서 흑인 음악은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미국 주류 음악의 대세가 흑인 음악으로 넘어가면서 새로 대중음악 시장에 진입하는 작곡가들이 그들의 스타일을 철저히 차용, 멜로디보다는 리듬 중심의 프로듀싱에 치중했던 덕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프로듀서들의 작법은 다르다. 전자의 경우, 피아노나 기타를 바탕으로 우선 멜로디를 쓴 후 비트를 입히고 편곡을 했다. 2000년대 이후 작곡가들은 먼저 비트를 찍어 놓고 이를 바탕으로 곡을 쓰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 팝에 음악적 뿌리를 두느냐, 1990년대 이후 빌보드 팝에 영향을 받았느냐의 차이다. 창작의 뿌리와 골조가 달라진 셈이다. 기성 세대가 ‘요즘 음악’에 느끼는 불만은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감각의 노화때문은 아니다. 음악의 구성 요소와 구조가 완전히 달라져서다. 팝의 중심축이 바뀌면서, 한국 대중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적어도 음악에서만큼은, 흑인 문화가 주류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가 미국 사회의 구조를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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