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심층적인가

2020.07.14 03:00 입력 2020.07.14 03:01 수정

[이문재의 시의 마음]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심층적인가

남쪽 바닷가에 사는 친구가 짧은 글과 함께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김종철 선생님 49재 중 1재, 제7일.’ 초 세 자루를 밝혀놓고 아미타경을 필사한 노트가 펼쳐진 사진 두 컷. 지난 7월8일 2재 때는 몇 사람하고 같이 산책을 했다며 역시 짧은 글과 함께 녹색으로 흐드러진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산책하다 길을 떠나셨다고 해서 우리도 오늘 같이 걸었다. 선생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길을 걸었다. 맑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광명진언을 외었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친구는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전남 장흥으로 이주했는데 선생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몇 년 전 선생님께서 근처 도시에 강연하러 오셨을 때 한 번 뵌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하지만 친구는 그 전부터 ‘녹색물’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문명 전환에 지푸라기라도 하나 얹는 마음으로 기후 관련 독서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마 선생님을 직접 뵙지 않았더라도 선생님의 급작스러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을 친구입니다.

장흥 친구만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녹색평론’을 읽어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이 격월간 잡지는 특이하게도 독자모임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인데 선생님의 마지막 손때가 묻어 있는 이번 7-8월호(173호)에는 25개 독자모임의 사발통문이 실려 있습니다.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독자모임이 제 친구처럼 각각의 방식으로 선생님을 배웅하리라 여겨집니다. 다들 안타깝고 미안하고 고마워하면서 뭔가 각오를 했겠지요. 저마다 숙제를 받아들었겠지요.

많은 분께서 추도사를 발표하신 뒤여서 제가 덧댈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그야말로 다면체였습니다. 학자, 비평가, 교육자, 사상가, 실천가, 편집자. 관심의 폭이 광범위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각도가 예리했고 심도 또한 깊었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한두 마디로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0여년 전, 녹색평론사가 대구에서 서울로 옮기면서 선생님을 자주 뵐 수 있었습니다. 편집자문위원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두 달에 한 번씩 자리를 같이했습니다.

사상가, 실천가 측면에서 선생님을 조명한 글이 많아서 저는 말을 줄이겠습니다. 대신 편집자로서 선생님의 면모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원고 청탁하시는 걸 목격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세상에 필자를 직접 찾아가서 원고를 부탁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대부분 e메일입니다. 제가 자주 겪어봐서 알지만, 전화를 하는 경우도 드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직접 찾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가을 29주년을 맞는 ‘녹색평론’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녹색평론’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 제가 말하고 쓴 것 대부분이 저 격월간 잡지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흔들릴 때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마다 선생님의 글과 책이 중심을 잡아주곤 했습니다. 선생님께선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이고 심층적인가.’ 저는 이를 ‘장포심’이라고 줄여서 뇌 한가운데에다 모셔놓고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때 세 가지 잣대를 들이대곤 합니다. 장포심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본질을 두루 아우릅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심층적인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근본과 연결된 것만이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결과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에 가닿는 것만이 그 과정 또한 윤리적이고 미학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심층적인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그리하여 근대문명의 폭력성을 넘어 땅에 기반한 공생공락(共生共樂) 사회로 가는 길을 찾아냈다면,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이 시간이 이토록 애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3재를 앞두고 저도 몇 가지 숙제를 받아듭니다. 그중 하나가 ‘녹색평론’에 연재했던 ‘나를 위한 글쓰기’를 책으로 묶는 것입니다. 벌써 나왔어야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늦어도 내년 30주년 이전에는 펴내겠습니다. 제게는 시민이 쓰는 자기 이야기가 ‘장포심’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나’를 주어로 자기 생각을 풀어내기 시작할 때, 그때 선생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우애와 환대의 생태문명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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