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론, 안 먹히는 이유

2020.07.21 03:00 입력 2020.07.21 03:03 수정

또다시 주한미군 감축 얘기가 미국발로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 방안에 관한 몇 가지 옵션을 제출했다고 보도했는데, 그 시점이 우리 4·15 총선을 앞둔 지난 3월이다. 이번 미 언론의 보도는 국내에서 대서특필됐지만,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넉 달 전 얘기를 이제 밝히고 있을 뿐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7번째 회의가 3월 하순에 있었으니, 이 옵션은 아마도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작년보다 방위비를 13% 인상하고 유효기간을 1년에서 5년으로 늘리기로 잠정합의가 이루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50% 인상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합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의 일방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왔다. 노무현 정부 초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요청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썼고 실제로 2004년 8월부터 미 제2사단 소속 1개 여단 병력이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기 위해 감축카드를 쓰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감축 옵션이 오히려 사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

첫째, 주한미군 감축론은 이제 우리 국민들의 피로감을 높일 뿐 압박카드가 되지 못한다. 미국은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 4·15 총선을 앞두고 미군기지 내 한국 근로자들에 대한 무급휴직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로 4월1일부터 근로자 4000여명이 월급을 못 받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주한미군 측이 기지 운영의 어려움 때문에 미 국방부 예산으로 이들에게 급여를 주기로 하고 6월 말까지 전원 업무에 복귀시켰다.

둘째, 미국 내의 부정적인 여론이다. 금년 7월7일 미 웨스턴켄터키 대학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42.9%가 감축에 반대하고 26.8%가 찬성했다. 미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주한미군 감축을 강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져준다.

셋째, 미 의회의 반대다. 미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협상에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쓰지 못하도록 ‘2019 국방수권법(NDAA)’에서 2만2000명, ‘2020 NDAA’에서는 현 수준인 2만8500명 이하로 병력을 줄이려면 미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지금 미 의회에서 추진 중인 ‘2021 NDAA’에서는 북한의 군사위협이 감소하고 한국이 억제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감축이 가능하도록 더 까다로운 조건을 덧붙였다.

넷째, 미 국방부와 국무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의 상충이다. 현재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면서 해외미군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전 세계 해외미군의 수는 전반적으로 줄어들지만 아시아지역의 미군 비중을 늘리고 있다. 7월17일 공개된 ‘국가방위전략(NDS) 이행: 첫 1년의 성과’ 보고서에서 에스퍼 미 국방장관도 중국을 겨냥해 동맹을 강화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끌어들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9월까지 독일 주둔 미군병력을 9500명 감축해 2만5000명 선으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선 독일정부가 미국이 원하는 만큼 방위예산을 늘리지 않아서라 해석한다. 하지만 이 역시 9500명을 감축해 일부를 러시아에 더 가까운 폴란드로 전진 배치하려는 ‘2018 NDS’ 구상의 일환이다. 인도·태평양사령부도 조만간 전력의 재배치, 재할당, 재전개가 이뤄질 계획이다.

미국 내 분위기에 못잖게 중요한 것은 북한이 더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평양을 방문했던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회고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냉전 종식 후 북한당국의 관점이 바뀌었다.(…)미군은 이제 (동북아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주한미군의 안정자 역할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작년 1월18일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당중앙위 부위원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에도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지금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겨냥해 국가안보전략과 군사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인도·태평양사령부나 주한미군 재편이 일어난다고 해도 방위비분담금 불만이나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따른 것일 뿐이다. 주한미군 감축론이 나오더라도 화살을 국내로 돌려 정치 이슈로 만드는 일은 하지 말자. 시야를 넓혀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 국제안보환경의 변화를 직시하며 우리 안보역량을 키우는 데 힘 쏟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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