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는 국정 전반에 걸쳐 ‘트럼프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대중 정책만큼은 트럼프 때의 중국산 제품 고율관세 유지는 물론 오히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로까지 반중 전선을 확대했다. 미·일·호·인 4개국협의체(QUAD) 정상회담과 한·미, 미·일 2+2 전략대화를 통해 동맹국과 우방국의 결속에 나서고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미·중 경쟁이 심해질수록 우리 외교는 전략적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과 중국이 우리의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당면한 안보위협 대응, 통일 비전 등에 두루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익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대외정책의 방향도 좌우된다.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동맹은 분단과 지정학적 위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현상유지 차원만 고려한다면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치중하며 QUAD 플러스에 주저 없이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를 후순위에 둔다고 해도, 통일을 내다본다면 어떤 대외정책이든 무책임하게 결정할 수는 없다. 미·중 대결 상황일수록 통일에 대한 올바른 전략적 태도를 취해야 영구분단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다. 통일지상주의자처럼 모든 정책을 통일에 맞춰 풀어나가자는 의미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조기통일론이 오히려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를 불러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빌미를 준 실패사례도 있다.

통일 비전과 관련된 주요 변수는 당사자인 남한, 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태도이다. 이들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이고 현실적인 국제정치의 양대 행위자이다.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 교수는 지정학적 특성상 한반도 통일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사자 태도 중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북한이 ‘투 코리아’ 정책으로 후퇴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통일이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업”이라고 규정하며, 자주적 통일을 위해 연방제를 내걸었다. 당규약도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한다는 도발적인 남조선해방론을 담았다. 하지만 금년 제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통일의 꿈은 더 아득히 멀어졌다”고 말한 것 외에 통일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으며, 작년 하반기부터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아·태위원회만 남긴 채 대남비서를 비롯해 민경련, 민화협 등을 없애고 통일전선부도 축소·해체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김여정은 3·15 담화에서 대남 협상창구로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해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8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 서문에는 조국통일과 관련해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이 ‘국방력으로 조국통일을 앞당기려는 입장을 반영’했다고 해설하는 바람에 무력통일론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문맥상으론 안정과 평화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도 통일에 대한 입장은 조기통일론, 연합론, 양국론 등으로 분열되어 있다. 조기통일론이 북한체제의 붕괴를 유도해 흡수통일하려는 구상이라면, 양국론은 평화공존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통일은 후손들의 선택에 맡긴다는 구상이다. 연합론은 평화공존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로 불리는 남북연합을 점진적으로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통일은 동북아질서의 현상변경을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 구상에서 당사자 변수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변수다. 역사적으로나 현대 국제정치적으로 강대국은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문제에서 개입했다. 강대국이 자국 이해를 우선시하다 보니 대체로 우리 통일에 원심력으로 작용했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의 든든한 후원도 필요하고, 중국의 방해도 없어야 한다. 우리가 강대국 변수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평화통일의 열쇠는 당사자인 남북한이 쥐고 있어야 한다. 남북한이 구심력을 발휘해야 강대국 변수를 극복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강대국들의 원심력에 끌려 남북대립, 남남갈등이 심화된 채 영구분단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국내적으로 정치 계절이 되면 미·중 사이의 전략적 선택 문제가 선거쟁점화될 우려가 있다. 소모적인 논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전략적 선택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경제적 이익일 수 있고, 안보위협 대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이익에 집착할 경우 민족의 재앙이 될 수 있기에 반드시 통일 비전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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