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차별금지법, 사회적 합의는 끝났다

2020.07.21 03:00 입력 2020.07.21 03:04 수정

[박래군 칼럼]포괄적 차별금지법, 사회적 합의는 끝났다

다급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에 관한 청원’이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서 오늘로 D-11일임에도 2만명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은 시작한 지 한 달 안에 10만명의 동의를 받아야 성사된다. 이런 동의를 얻으면 해당 상임위원회에 청원이 올라가 심의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거나 폐기된다. 국민들에게 입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도입된 진일보한 제도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마음이 초조한 이유 중 하나는 차별금지법 반대 청원은 21대 국회에서 첫 번째로 청원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들이 대거 조직적으로 참여해서 무난하게 10만명의 벽을 넘었다. 분명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도 차별금지법 반대 청원은 성사되고, 차별금지법 찬성 청원이 실패하면 혐오세력들의 차별금지법 반대는 더욱 기세를 올리고, 이를 빌미로 국회의원들이 입법에 더 소극적일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11일이 차별금지법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시간이다.

물론 이번 차별금지법 청원은 누군지 모르는 시민 한 분이 시작했기 때문에 잘 알리지도 못했고, 그사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피소 및 사망 사건으로 차별금지법 청원을 홍보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 및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 피해자와 연대하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고 있는 것은 다행인데, 이런 긍정적인 움직임과는 정반대의 움직임도 있다. 여성 비서를 포함한 보좌진들의 채용을 줄이고, 업무를 제한하는 것이 위계에 의한 성추행 등을 줄일 수 있다는 등의 발언들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KBS 뉴스9의 이소정 앵커는 “만에 하나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아예 남자를 쓰는 게 낫다는 주장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절반이 여성인데 성희롱 막자면서 차별을 조장하는 이런 발언과 인식들,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일침을 날렸다.

이러한 성별 등을 이유로 한 분리, 구별, 제한, 배제, 거부하는 행위 등을 차별로 보고 모든 사람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가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그것도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제정이다. 차별은 잘못된 것이고, 그러니 차별하면 안 된다는 확고한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는다면 굳이 법을 만들지 않아도 되겠지만, ‘고용, 교육, 재화용역, 행정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차별지시, 차별표시조장 광고, 괴롭힘, 성희롱’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이미 2007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한 이래 매번 국회에서 이 법이 발의되었다가 폐기되거나 소수 기독교인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철회되고는 했다.

법의 제정이 미루어진 지난 13년 동안 우리 사회는 차별과 차별의 한 유형인 괴롭힘 등이 아예 고착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극우 기독교 세력들이 차별금지법이 마치 동성애 조장법인 것처럼 왜곡해온 게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보수 기독교 세력은 자신들의 교세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위기를 느꼈고, 그로부터 동성애를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교세 하락을 만회하려고 했다. 지금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교회 파괴법이니 가정 파괴법이니 하면서 동성애에 반대했다가는 목사가 교회에서 마치 체포되는 것처럼 왜곡·선전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먼저 시행된 영국이나 캐나다 등 나라들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가짜뉴스를 퍼뜨려왔다. 이런 일부 교회세력들의 동성애 혐오 활동은 우리 사회의 혐오세력들에게 용기를 주고 부추겨 왔다. 교회 목사님들의 거침없는 혐오발언이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무디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혐오 활동이 마치 정의로운 용기 있는 행동처럼 오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광주 5·18 유족들에게 행해지던 ‘홍어택배’라는 조롱,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에게 퍼붓던 ‘시체팔이’라는 모욕이 횡행하는 끔찍한 세상을 보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묵인하고 방관해온 한국사회의 조건이 다른 사회적 소수자나 유가족들에 대한 혐오를 확산시키는 토양이 되었던 것이다. 혐오가 세를 키우는 토양을 변화시키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라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간 정치권은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미루는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안 됐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왔다. 하지만 지난 6월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미 사회적 합의는 끝났음을 보여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 의사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일부 교회 세력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이유로 들고 있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과 관련해서도 73.6%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 6월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 10명의 의원은 입법안을 발의했고, 6월30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국회에 권고하는 의견표명을 했다. 이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이 캠페인도 힘이 실리지 않고, 국회에서 입법 논의도 지지부진할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드린다. 8월1일까지 10만명의 벽을 넘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이 성사될 수 있게 관심을 가져 주시길. 차별은 금지되어야 하고, 누구나 평등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상식이 혐오보다는 강하다는 걸 꼭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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