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분산, 권력 분산에서 시작

2020.07.29 03:00 입력 2020.07.29 03:03 수정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제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쟁점화되고 있다. 지방소멸시대가 가시화되는 마당에 서울의 집값이 무섭게 치솟는 현상은 대선을 앞둔 여당의 입장에서 결코 관망할 수만은 없는 문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방소멸의 문제는 행정수도를 옮기거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등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인구의 지역적 분산이 아닌 ‘권력의 분산’이라는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즉 분산되어야 할 것은 공공기관이나 인구가 아니라 권력이며, ‘지방이전’이 아니라 ‘지방분권’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나누는 방식보다 새로운 권력과 핵심들이 각 지역에서 창출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한국의 권력은 중앙정부, 특히 대통령 1인에 집중되어 있고, 모든 현상은 ‘중심 대 주변’으로 양분화·종속화되어 있다. 권력이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을 때 다른 모든 곳들은 상대적으로 ‘지방’이 된다. 권력이 몰려있는 곳의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화를 통해 어쩌면 덴마크 크기의 창의적 지역정부 10개를 묶는 연방정부로 재탄생될 수도 있다. 얼마전 영남권 시·도지사들이 모여 수도권 집중에 대응하기로 했다는데 이런 움직임들이 전국 단위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교육, 부동산, 조세 등을 포함해 핵심정책의 결정권을 지역 단위로 분산해 다양한 실험이 일어나도록 한다면 행정수도나 공공기관 이전보다 큰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다만 국방, 외교, 환경 등은 중앙정부의 몫이다.

특히 대학은 지방분권화의 핵심이다. 교육권력의 중심은 대학이고, 대학은 다시 지역의 지식과 인재, 산업 등과 연결되어 있다. 독일이나 미국 혹은 우리보다 인구가 적은 캐나다조차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에서 대학을 관할하는 것도 지방분권화의 핵심적 단면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립대학이라는 타이틀이 중요한데, 이건 어쩌면 일제 제국대학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일지 모른다.

대학에 대한 자치권을 가지지 못한 교육지방자치는 절반의 자치에 머문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는 해당지역 고등학교 졸업자들이 그 주의 대학에 우선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고교-대학 지역연계정책을 통해 정주성을 보장하지만 우리는 이런 정책이 불가능하다. 대학에 대한 모든 교육정책은 중앙정부의 권한 아래 있고, 대학평가에서도 시·도의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요컨대 우리의 대학들은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공공기관 2차 이전과 관련해서 서울대학교 이전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선 서울대의 지방이전 가능성을 넘어 폐지론까지 언급한다. 심지어 정부가 서울대 이전과 부동산 정책을 연계해서 쟁점화하려고 한다는 루머까지 등장한다. 서울대를 지렛대 삼아 전체를 묶어 평준화하는 이른바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 안을 통해 지방대의 수준을 올리면 자연스레 수도권 인구분산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지방분권의 시각에서 보면 한낮의 몽상과 같다. 서울대 폐지가 수도권 인구분산이나 교육정상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또한 국립대학을 묶어 하나의 통합대학을 만드는 방식은 오히려 지역에 터잡아야 할 대학들조차 그 정체성을 상실한 채 중앙으로 집중하도록 만드는 역효과를 만들 뿐이다. 또한 사립대학이 전체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10개 국립대를 묶어봤자 언제든지 나머지 사립대학들에 의해 휘둘릴 수 있다. 핵심은 통합네트워크가 아니라 공공성 있는 대학의 절대수를 늘리는 것이다.

또한 자주 등장하는 파리대학 모형도 우리와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탄생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파리대학은 파리 인근지역에 한정해 통합된 분과별 지역대학연합이다. 우리처럼 전국에 퍼져있지 않다. 또한 파리대학을 비롯한 프랑스 고등교육개혁은 68혁명의 산물이다. 파리대학은 12세기 교수조합이 만든 대학이었고, 따라서 교수들의 권위가 하늘을 찔렀다. 이에 대한 소르본 학생들의 불만이 68혁명을 통해 분출되었고, 당시 교육부 장관 에드가 포르는 파리대학을 해체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프랑스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들이었던 그랑제콜은 건드리지 않은 채 오직 대중교육을 전담했던 대학교만을 중앙집권화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평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대학개혁이 교육목적 이외의 이유로 휘둘리는 일은 자제돼야 한다. 지방에 경쟁력 있는 대학이 필요하면 서울대만큼 투자하라. 기르지 않고 열매를 나누기만 하려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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