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년이나 남았다

2020.07.31 03:00 입력 2020.07.31 03:05 수정

변화무쌍한 세상사를 하나의 개념이나 지표, 일관된 이론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세상사, 우린 모든 걸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기를 꿈꾼다. 불확실성이 점증하는 지금 같은 시기엔 더더욱 그렇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정치철학자였던 이사야 벌린(1909~1997)은 이렇듯 세상 현상을 거대 개념, 이론 등을 이용해 일관된 체계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고슴도치’에 비유했다. 아마도 어둡고 좁은 곳을 찾아 웅크려 있곤 한다는 고슴도치의 습성과 외곬으로 한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닮아서 그렇게 명명하지 않았나 싶다. 반대로 세상사란 게 여러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돌아가니 하나의 고정된 개념이나 이론체계로 모두 설명해낼 수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여우형’이라 칭했다. 의심이 많은 여우의 습성에 빗댄 것이다. 물론 무엇이 더 낫다 혹은 그르다의 구분은 아니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런 다른 유형의 사고방식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까? 필립 테틀락이라는 정치심리학자가 이 주제로 오랫동안 연구를 했다. 1988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15년 동안 총 284명의 정치·경제·지역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주요 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묻고, 총 8만개가 넘는 그들의 미래예측에 대해 사후 결과를 분석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고르바초프가 쿠데타에 의해 물러날 가능성,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백분리(아파르트헤이트)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철폐될 가능성, 걸프전이 발발할 가능성 등등이다.

분석 결과가 흥미롭다. 전반적으로 ‘고슴도치형’ 전문가들이 ‘여우형’에 비해 미래 예측력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의외로 한 분야만을 외곬으로 파고들어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는 고슴도치형 전문가들이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한 예측력에서조차 여우형 전문가들에 비해 오히려 더 떨어졌다. 협소한 분석과 인식의 틀로 세상사를 환원해서 보려는 성향이 강해져서 숲 전체보다는 나무들의 미시적 차이에 더 주목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나름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는 종종 많은 지식과 정보량을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대한 통찰력과 혼동하곤 하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결과는 5년 이상 되는 중장기적 미래예측에 있어서는 고슴도치형이든, 여우형이든 상관없이 전문가의 예측력이 일반인의 예측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좀 심하게 말해, 침팬지가 다트 판에 다트를 던져 예측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의 예측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단기 예측의 경우엔 전문가의 예측력이 일반인에 비해 높았다. 결국 미래예측에는 누구나 늘 신중하고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함을 시사한다.

하지만 현실에서야 어디 그런가? 미래에 이미 갔다 온 듯 단정적인 예측이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일쑤다. 사람들이 그런 단정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집요할 정도로 강해서 불확실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 바라는 바에 대해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자 한다. 사회정치적 쟁점사안일수록 자신과 같은 의견, 같은 성향인 사람들과의 무리지음에 더 몰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한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이런 확증편향에 기반한 동류적 무리지음을 더욱 강화해왔다. 공론의 장이 같은 정보와 의견이 무한반복되는 거대한 반향실(echo chamber)로 전락한 지도 오래다.

문제는, 중장기 국가 정책과 전략도 이렇게 결정되는 경우다. 위정자들이 자기 진영 혹은 정파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 국정을 운영하다 보면, 국가 전략의 수립과 집행, 사후분석의 단계마다 오류가 발견되기도 어렵고, 오류가 발견돼도 시정하기 힘들게 된다. 비판적 소수 의견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를 시정하려면 기존 정책결정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는 외부자의 시선과 비판에 더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비판을 융합해 대안을 만들어내려 해야 한다. 조급하면 같은 진영, 같은 정파의 얘기에만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듣고 싶은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근본 장점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정 능력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 2년 가까이 남았다.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나 부동산값 폭등 등으로 드러난 일부 오류들에 대해 더 다양한 비판들을 포용하면서 차근차근히 시정해 나아가길 바란다. 미래는 늘 열려 있다. 우리 마음이 닫힐 수는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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