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학기가 주는 교훈

온라인과 출석이 섞인 하이브리드 학기 동안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생겼다. 중위권 학생들의 실종이다. 몇몇 신문들은 “중위권 학생 확 줄고 하위권 급증” 혹은 “실종된 학력 중간층”이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실제로 중·고교 교장들을 만나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적분포는 종 모양의 정상분포곡선을 그린다. 중위권이 두껍고 상위권과 하위권은 얇다. 그런데 온라인교육이 이루어지는 동안 이 분포가 M자 곡선으로 변했다. 중위권이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이동하면서 양극화된 것이다. 특히 수학의 경우 두드러졌는데, 한 조사에 따르면 강북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40점 미만 학생이 41.9%로 가장 많았고 70점 이상 상위권이 35.9%, 그 사이 중위권은 22.2%를 나타냈다.

특히 학교에서 수업을 착실히 들으며 중위권을 유지하던 아이들의 성적이 제일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상위권은 어쨌든 공부하고 하위권은 포기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위권의 실종은 교사들이 애써 가르치고 끌어 올려놓은 학교교육의 성과가 허무하게 사라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빨리 정상적인 교실로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 현상은 지금 학교교육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가 “중위권”이라고 불렀던 이 부분이 스스로 열심히 한 결과가 아니라 관리학습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교실에 붙잡아두고 만들어낸 공간통제, 시간통제, 행동통제의 성과물이었고, 그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곧 증발해버렸다면 이런 학습의 성과는 그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결국 학교가 만들어낸 최대 성과가 일종의 신기루였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동영상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탓할 게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교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성찰해야 한다.

다시 불어닥친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아이들은 또다시 덩그러니 모니터와 TV 앞에 혼자 남아야 한다. 지금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은 교과지식 이전에 그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이다. 학교교육의 최대 성과는 혼자 학습할 분명한 이유를 가르쳐주는 것이며, 혼자 노트북을 열고 동영상을 찾아 학습하는 자기주도 학습력과 호기심일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지나치게 교사의존성을 키운다. 언제까지 옆에 붙들어두고 관리해줄 것인가?

흔히 우리 아이들의 학습 흥미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라고 말한다. 호기심과 자기주도 학습력 역시 OECD 최하위일 것이다. 관리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공부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평생학습시대 우리 교육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이다.

퀴즈 하나를 드린다. 가장 “교육적”인 성취분포는 어떤 모양일까? 종모양일까, M자일까? 정답은 좌우가 뒤집힌 L자 커브이다. 즉 최상위권이 가장 많고, 성적이 낮아질수록 빈도가 낮아지는 커브이다. 혹자는 이것을 ‘성적 퍼주기’라고 비난한다. 나는 그런 분들께 되묻는다.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가르치고, 모든 학생이 최선을 다해 공부했을 때 보여주는 진정한 교육의 성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배제해야 하는가 말이다. 힘들어하는 학생을 서로 도와주면서 마침내 전교생이 모두 90점 이상을 받았다면? 교사들은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배워야 할 것을 모두 배웠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대학입시는 대학이 알아서 하게 하라. 고등학교가 이것 때문에 미리부터 망가져줄 일이 아니다.

왜 이들 사이를 벌려서 변별력을 높이고, 그 사이에 등급을 집어넣어서 종모양 정상분포곡선을 만들어야 할까? 왜 이들을 승자와 패자로 나눠야 할까? 그런 교육이 ‘정상적’인가? 그게 ‘정상분포곡선’이 만들어내는 학업성취분포인가? 오히려 내가 볼 때는 교육의 실패를 인정하는 곡선일 뿐이다.

학교에서 평가와 시험의 기술이 세련되면 될수록 교육은 망가진다. 그 기술은 등급을 매기는 세련된 형틀로 사용되고, 아이들은 그 형틀이 두려워 공부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다. 변별력은 흥미도와 창의성을 죽이는 칼이다. 수단이 본질을 흔드는 꼴,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꼴을 언제까지 관망만 하고 있어야 할까? 성적을 쉽게 매기기 위해 암기 위주의 교육을 하고, 그 결과를 상대적 등급화하는 현실을 도대체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할까?

지금까지 상위 20%만 느끼던 성공경험을 모든 아이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은 성취를 통해 기쁨과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성과이다. 학습은 졸업 후에도 이어진다. 학습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평생학습자로서의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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