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원짜리, 천원짜리 사건…누가 구분하나

2020.08.24 03:00 입력 2020.08.24 07:30 수정

몇 년 전, “10원짜리 사건에 10원어치의, 1000원짜리 사건에 1000원어치의 공력을 기울이라”고 훈시하던 검사장이 있었습니다. 가격 매기는 기준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회의만 길어질 듯해 말을 삼켰지요. 특수부는 한정수량 명품 생산부서, 형사부는 염가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부서로 비유한 간부도 있었습니다. 한정생산 명품에 불량률은 왜 높은 거냐고, 형사부에 배당된 사건 당사자가 그 말에 수긍하겠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역시 삼켰습니다. 현실 앞에선 덧없는 이상론에 불과하니까요.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의정부지검 근무 시절, 전처에게 집착하는 한 남자의 협박사건을 배당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배당받은 42건 기록 중 비교적 얇아 반갑게 펼쳤는데, 행간에서 느껴지는 증오가 얼마나 깊던지 바닥이 보이지 않더군요. 험악한 말이 행동으로 이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피해자와 피의자에게 다급히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화하던 그때 이미 모두 죽었다는 걸 며칠 뒤 변사기록에서 확인했지요. 피의자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그 사건이 10원짜리일까요.

지속적인 직무배제로 내부고발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려 결국 제 발로 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괴롭힌 사례들을 기사로 종종 접했는데, 검찰에선 외려 일을 더 주더군요. 짬이 나면 내부망에 비판글을 더 쓸 수 있으니 바쁘게 만들고, 일이 많아 실수가 잦아지면 벌점이 쌓일 테니 쫓아낼 명분 삼기에도 딱 좋습니다. 적격심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엔 수레로 실려 오는 사건기록들이 벌점으로 보여 얼마나 숨이 막히던지요. 이틀간 배당받은 사건기록이 캐비닛 다섯 개를 꽉 채우는, 속칭 ‘벌배당’도 받아 보았고, 수사지휘 전담을 하며 매달 500건이 넘는 사건을 배당받기도 했습니다. 간부들의 감정 실린 보복배당에 고생스러웠지요.

고달팠습니다. 기록에서 엿보이는 당사자들의 감정들은 날이 서 시퍼렇고 사건 배경이 안개 너머 어슴푸레 보이는 정도라 수사해야 할 사항들이 적잖은데, 주말을 반납하고 매일 야근해도 사건당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으니 숨이 턱턱 막힐밖에요. 간부들은 선택과 집중, 효율 등 미사여구로 신속 처리를 독촉합니다만, 선택받지 못해 버려도 괜찮은 사건이란 없기에 검사들은 기록더미에서 늘 방황하게 됩니다. 10원짜리 사건으로 잘못 분류된, 여럿 목숨 달린 사건에 검사의 헌신으로 100원어치의 진실을 캤다한들, 그 검사에게 최선일지 몰라도, 사건에 있어 최선의 수사라 할 수 없지요. 사건 당사자들에게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수사결과는 검사의 역량 부족 탓이기도 하나, 잘못된 검찰 내부구조에 더 큰 원인이 있는 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무죄구형으로 정직징계를 받고 쉬던 2013년 2월, 동료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사위원회에서, 징계 전력자는 근속기간 예외를 두어 기간이 차지 않았더라도 전출시킬 수 있도록 했으니 유배지 창원지검으로 발령 나지 않겠느냐”는 위로였지요. 중앙지검에서 1년 만에 쫓겨나 정신없기도 했지만, 창원시민들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주권자로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동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는데, 서울시민과 달리 유배지 시민들은 문제검사로부터 수사받아도 된다는 말이라, 주권자들의 등급을 나누어 차별하는 어이없는 인사입니다.

“경찰 송치사건이나 처리하는 형사부 검사로 남을 것인지, 변호사들에게 뒷돈 받고 소소한 사건들을 좀 봐주더라도 수사비로 거악을 척결하는 특수부 검사가 될 것인지 잘 선택하라”고 초임검사에게 조언하던 황당한 선배도 있었습니다. 그 선배가 어찌나 큰 거악으로 보이던지 무서웠지요. 덮고 싶으면 소소한 악으로 단정하여 눈감고, 죽이고 싶으면 거악으로 규정하여 파헤치는 막무가내 검찰의 전횡을 봐버린 듯 아찔했습니다. 10원짜리 사건과 1000원짜리 사건. 폼 나게 수사할 거악과 덮어도 되는 소소한 악.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받을 시민과 불량검사에게 수사받아도 되는 시민. 그런 구별이 정당하고, 검찰의 잣대는 과연 공정할까요.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권력과 재력의 다소를 불문하고 죄의 무게에 합당한 처벌을 하는 것이 정의니까요.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검찰의 저울이 고장 나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지요. 눈금을 속여 온 검찰 등 권력자들이 수리공이 되어서야 고쳐질 리 있겠습니까. 검찰개혁의 동력은 오로지 주권자들의 관심과 비판뿐입니다. 개혁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고쳐 공정한 저울로 거듭날 수 있도록 주권자들의 관심과 비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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