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민이다

얼마 전부터 하루에 몇㎞씩 뛰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원래는 체중감량을 위해서였다. 실제로 최근 100일 동안 18㎏ 정도를 감량했으니까 그럭저럭 성공한 셈이다. 처음에는 1㎞를 간신히 뛰었지만 5㎞를 웃으면서 뛸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쉬지 않고 10㎞를 뛰었다. 이제는 그렇게 뛸 수 있게 된 나의 몸이 예쁘고 대견해서 계속 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같이 뛰는 분들이 생겼다. 매일 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마다 한강의 모 공원에서 뛰겠다고 했고, 그때 나온 분들과는 인사를 하고 함께 뛴다. 언젠가는 20명이나 나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되었다. 코로나가 잦아들 때까지는 모이지 않기로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뛰고 서로 뛰었다는 해시태그를 붙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하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단계가 강화된 이후로는 마스크를 쓰고 뛰고 혼자서 뛰고 있다. 사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빠온다. 이전의 속도로 뛰다가 너무 힘들어서 멈췄고, 조금 더 천천히 뛰기로 했다. 페이스북에 해시태그와 함께 “마스크를 하고 뛰니까 너무 힘들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어디선가 함께 뛴 분들이 “저도요, 저도 그랬습니다” 하고 나타났다. 그러던 중 어느 분께서 “야외에서는 2m 이내에 사람이 없을 때는 벗어도 괜찮아요” 하고 댓글을 달았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쓰는 일은 의무가 되었다. ‘의무화’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강제 지침이 되었고, 계도 기간이 지나고 나면 미이행자에게 범칙금도 부과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스크를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가 않다. 누군가는 에어로졸 감염이 되지 않으니까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는 건 의미가 없다고도 말했다. 사실 비말이라 부르는 것이 몇 미터를 날아가 계속 부유하다가 누군가를 감염시킬 확률이 얼마나 높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계속해서 마스크를 쓰고 뛰려고 한다. 설령 이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해도 그렇다. 뛰다 보면 좁은 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면 여러 사람들을 지나쳐 가야만 한다.

그때마다 나는 수십 명의 누군가와 만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원칙보다도, 그들 중 몇 명이라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나에게 공포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든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괜한 공포심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고 댓글을 달았다.

나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같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시민임을 느낀다. 어쩌면 모두가 감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행동들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적어도 서로를 보며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도 나도 이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시민이다. 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감각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눈치를 보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이들은 시민이 아니라 식민의 시대를 살아간 과거의 신민이다. ‘시민’에는 받침이 없지만 ‘식민’과 ‘신민’에는 각각의 받침이 있다. 그 받침의 이름은 제국이었고, 독재였고, 폭력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받치고 이끌어 줄 때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자립성을 가진 한 사람의 시민이 되어야 한다. 별것 아니지만 나는 조금 힘들어도 마스크를 쓰고서 계속 뛰려고 한다. 정말 별것도 아니지만, 그 길에서 마주치게 될 누군가의 안도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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