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그 당이 바뀔 리 없다”

2020.10.08 03:00 입력 2020.10.08 03:05 수정

국민의힘이 지난 5일 중앙당사를 서울 여의도로 옮겼다. 자유한국당 때인 2018년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영등포로 떠났다가 2년3개월 만에 다시 의회정치의 중심지 여의도로 복귀했다. 앞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당명을 바꾸고, 당 색깔도 핑크에서 빨강, 파랑, 흰색 혼합으로 교체했다. 당 강령에 5·18 등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을 담았고, 10대 기본 정책에는 경제민주화 구현을 포함시켰다. 4·15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의 껍데기는 모두 바꿨다.

박영환 논설위원

박영환 논설위원

김 위원장의 처방은 과거 지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6월1일 첫 비대위 회의에서 “진취적인 정당이 되도록 만들 것”이라며 “정책 측면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그는 진보정당보다 먼저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재벌개혁과 지배구조 합리화를 위한 ‘공정경제 3법’에도 찬성했다. 그는 5·18 민주묘역을 찾아 무릎 꿇고 울먹이며 사죄했다.

김종인호의 지난 넉 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변화를 통한 신뢰 회복이다. 진취적 의제들을 던지며 관심은 끌었지만 “그 당이 바뀔 리 없다”는 의심은 여전하다. 한국갤럽의 9월 넷째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21%였다. 집값 폭등 등으로 여당 지지층이 이탈한 데 따른 반짝 반사효과로 8월 둘째주 27%까지 올랐지만 최근에는 다시 20% 수준으로 내려와 박스권에 갇혀 있다. 총선 직후 17%로 추락했을 때에 비해 크게 오른 것도 아니고, 총선 직전의 25%를 회복하지도 못했다. 같은 기간 여당 지지율이 10%포인트 정도 하락했음에도 제1야당 지지율은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의 헛발질이 계속돼도 국민의힘은 그 대안이 못 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부터 갈 길은 훨씬 더 험하다. 지금까지 김 위원장 개인이 화두를 던지며 여론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의원들과 함께 구체적 행동으로 변화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 위기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김종인 효과’의 동력도 약해지고 있다. 김 위원장 독주에 따른 피로감이 커지면서 좌클릭에 대한 의원들의 반발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보수 논객들은 어설픈 좌파 흉내내기를 멈추라고 충고한다. 급하게 밥을 짓다보니 아래는 타기 시작했는데 위는 아직 설익은 게 지금 당의 현실이다. 김 위원장이 보수가 ‘조자룡의 헌 칼’처럼 활용해온 노동법 개정을 꺼내며 공정경제 3법 처리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도 재계와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한 포석이다.

쉽지 않겠지만 국민의힘은 더 많이 변해야 한다. 낡은 보수의 가치를 버리고 공정과 공존이란 21세기 시대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양극화, 청년실업, 집값 상승에 코로나19 경제위기까지 겹치며 다수 시민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약자와의 동행이야말로 대안정당을 추구하는 보수가 앞세워야 할 가치다. 그 징표로 공정경제 3법부터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을 개혁이라 외치다간 ‘도로 박근혜당’이 될 수도 있다. ‘영남 노인당’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면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지금껏 안 가본 변화의 길을 과감하게 선택해야 한다. 공포가 느껴지겠지만 선을 넘어야 산다.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보수가 돼야 한다.

박스권 탈출을 위해 할 일은 이뿐이 아니다. 시민적 상식에 어긋나는 극우 세력과 단절해야 한다. 당무감사를 통해 전광훈 목사 등 극단주의 세력에 동조해온 김진태, 민경욱 전 의원 등을 솎아내야 한다. 시민들은 인물을 통해 그 정당에 일체감을 느끼는데 지금 국민의힘에는 구심점이 될 대선 주자가 없다. 인물난 속에 김종인 대망론까지 뜨고 있다. 김 위원장이 정말 출마할 게 아니라면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대권 잠룡들 쪽으로 돌려야 한다. 새로운 보수를 정립하기 위한 야권 잠룡들의 경쟁이 본격화돼야 한다.

갤럽의 9월 넷째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의 비호감도는 60%를 기록했다. 3개월 전에 비해 9%포인트 낮아졌다. 조국 사태로 민심 이반이 심각했던 지난해 10월 둘째주 조사에서도 자유한국당의 비호감도는 62%나 됐던 것에 비하면 긍정적 신호다. 뭘 해도 저 당은 싫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국민의힘의 진짜 변화는 지금부터다. 여기서 멈추면 여권의 실패를 바라는 것 외에는 집권할 길이 없는 반쪽 정당이 될 것이다. 썩은 대들보는 그냥 둔 채 빨강, 파랑, 흰색을 섞어 페인트를 칠하고 대문만 바꿔 다는 건 온전한 리모델링이 아니다. 누가 그 위험한 집에 들어가 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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