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란으로 돌아갈 순 없다

2020.10.12 03:00 입력 2020.10.12 03:01 수정

월급 받고 살다 영세자영업자가 된 지 4년째다. 처음은 좋았다.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고 일의 양도 적절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일을 결정하고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잠시였다. 또박또박 나오는 월급은 쪼들리는 생활에 그나마 예측 가능한 삶을 보장했지만, 들쭉날쭉한 수입은 두세 달 앞을 준비하는 것도 불안하고 벅찼다. 그러다 보니 늘 일에 갇혀 산다. 이제는 주말도 없다. 내가 일을 지속하려면 일하는 양을 무한정 늘려야 한다는 단순하고 가혹한 규칙만이 내 삶을 규정할 뿐이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10년 전 창업이 번성할 당시 중장년들 사이에선 ‘치킨을 시키느냐 혹은 치킨을 튀기느냐’의 선택만 있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신종화 소상공인연구소장과 함께 2005~2019년 매해 9~12월 포털에 노출된 기사 1730만건을 살펴봤다. 지난 15년간 소상공인·자영업과 관련된 기사량과 기사비율은 모두 증가했다. 기사 1000건당 소상공인·자영업 어휘의 노출은 노무현 정부 1.9건, 이명박 정부 2.8건, 박근혜 정부 2.9건, 문재인 정부 최근 3년간 6.1건 등으로 나타났다.

정부별로 소상공인·자영업과 함께 언급된 주요 어휘도 살펴보았다. 노무현 정부는 부고·부음·부친상 등의 순으로, 이명박 정부는 지원·부고·창업 등의 순으로, 박근혜 정부는 지원·창업·부고 등의 순으로, 문재인 정부는 지원·최저임금·일자리 등의 순으로 많이 언급됐다. 소상공인·자영업은 부고에서 창업의 대상으로 다시 최저임금과 일자리 정책의 대상으로, 즉 사회 영역에서 경제 영역으로 자리로 옮기고 있었다. 그 외 정부별로 정책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창업, 박근혜 정부는 전통시장,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등으로 나타났다.

올해 10~12월에는 어떤 의제가 소상공인·자영업을 설명하게 될까. 과거 기사로 보면 10월엔 태풍, 11월엔 최저임금, 12월엔 일자리 등의 정책지원 논의가 주를 이뤘다. 일자리로 패러다임이 이동한 소상공인·자영업 정책은 10월엔 고용통계와 공공일자리 목표, 11월엔 최저임금과 함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제조업 대책, 내년 예산 등의 논의가 많았다. 12월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상공인·자영업의 부담 증가를 걱정하는 논의가 많았다. 일자리 논의는 11월이 가장 많았고, 그 외 카드수수료 인하, 무인기 설치 등 인건비와 연관한 언급이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보면, 소상공인·자영업의 생존을 위해 추가적인 금융 및 생존자금 지원 논의가 재부상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또 창업 대신 폐업과 재기 지원 정책이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에 대한 단기 지원은 물론 중장기적 종합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기본소득 시행과 고용보험 확대는 뉴딜의 주요 골자이자,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겐 중요한 버팀목이고 활로가 될 수 있다. 자원의 새로운 재분배는 다른 이들의 자원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는 자연선택으로 발생한 변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로 발생한 변화다. 이러한 변화에 모두가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았다. 한쪽이 무너지면 나머지 한쪽도 같이 무너질 수 있다. 지금은 모두의 공존을 위한 이타적 이기주의가 발휘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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