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

2020.11.09 03:00 입력 2020.11.09 03:05 수정

세상의 관심이 온통 미국에 가 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은 분명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10년 뒤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김종철이다. 그가 정의당 대표가 되고 나서 내세운 연금개혁, 기본자산제, 전 국민 고용소득보험, 조세개혁, 중대재해기업처벌, 낙태죄 폐지 등이야말로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처럼 실제 우리의 미래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김종철은 원래 정의당에서 ‘아재 개그’를 담당하던 사람이다. 흔히 생각하는 진보 정치인의 비장미나 엄근진과는 거리가 멀다. 김종철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유쾌하다. 노회찬이 빗자루를 들고 기타를 칠 때, 컴퓨터 키보드를 입에 물고 멜로디언을 연주하던 사람이 김종철이다. BTS의 팬 ‘아미’의 일원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삼행시를 받으려고 페이스북에 줄을 서 있고,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언론 인터뷰에서 종종 엄숙하고 무섭게 나온 사진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분명히 아재 개그 폭풍 드립을 날리고 싶었을 텐데, 억지로 참고 있는 게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념적 지향이 무엇이든, 그가 낙관적 진보주의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30년을 진보정당에 몸담으면서 자신의 선거를 포함해 수많은 패배와 좌절, 한계를 경험했음에도 그에게는 늘 여유가 있다. 당을 떠난 동료를 비난하지도 않고 자신의 일을 떠벌리지도 않은 채로, 항상 거기서 최선을 다해 왔다. 낙관주의야말로 그가 진보정당을 끝내 떠나지 않은 힘이고, 지금 한국의 진보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종철의 정의당은 그래서 희망이 있다.

그의 개그 본능과 낙관주의는 세대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는 1970년생이고, 90학번이다. 소위 X세대의 첫 주자다. 민주화 이후 주요 정치인들은 독재의 편에 섰거나 반유신 투쟁을 했거나, 민주화 세력이거나 반민주화 세력이거나, 통일이거나 반통일이거나 했다. 물론 거대 정당들에도 70년대생 초·재선들이 있지만 그네들이 언제 당의 주류가 될 수 있을지는 막막하다. 반면 김종철은 작은 정당이긴 해도 당의 비전과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대표다.

김종철의 정의당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정의당이 민주당의 2중대가 아니라 민주당이 정의당의 2중대가 되도록 하겠다는 말은 참으로 반가운 인식이다. 정의당이 정책 어젠다를 선도해야 하는 이유는, 이 당이 진보정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거대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 정당은 당면한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한걸음 뒤에서 가도 괜찮다. 반면 소수 진보정당은 언제나 사회적 변화를 먼저 가늠하고 맨 앞에서 정치권 전체를 이끌어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지 정책 제안에 멈추지 않고, 철학과 가치의 문제를 항상 중심에 놓고 논쟁해야 한다. 정책과 제도는 철학과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정책과 제도에 너무 매몰되면 거대 정당이 만들어내는 정쟁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본질이 사라지고 반대냐 찬성이냐의 선택을 강요받기 일쑤다. 반면 철학과 가치,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담론은 그런 한계를 뛰어넘어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사실 모든 정책은 다수의 사람들이 그 정책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동의할 때 작동한다. 부동산을 기어이 투기 수단으로 삼겠다는 사람들, 학벌 세습에 기어이 편법을 동원하겠다는 사람들이 다수라면, 부동산 정책과 입시 정책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시험에서 1점 더 받은 사람이 영원히 정규직의 수혜를 누리고, 1점 부족했던 사람은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사는 것이 공정이라고 믿는다면, 어떠한 일자리 정책도 무용지물일 것이다. 일시적으로 그런 제도들이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민주당이 실패해왔던 것이 이 지점이고, 정의당이 담당해야 할 몫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품위 있는 정치’다. 정책은 보수적이지만 정치 행태는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기성 정당들의 덕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거대 정당들이 막말과 정쟁으로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럴 때 정의당이 정치의 품격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은 이념을 떠나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지지할 것이다.

김종철 대표는 두 자릿수 지지율을 약속했다. 너무 소박하다. 두 자릿수 지지율을 넘어서 제2당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10년 안에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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