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한 단과 임금님의 행차

2024.03.28 22:00 입력 2024.03.28 22:03 수정

대파 총선이다. 대파가 모든 것을 정리했다. 한국정치에서 한 달은 긴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짜 전문가들은 알고 있었나 보다. 2월 중순경, 정치와 선거를 오래 하셨던 분께 물었더니 ‘요새 재래시장에 나가봤어?’라고 반문하셨다. 여야가 공천으로 한참 시끄러울 때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물가가 심상치 않아요’라고 답했다. 하기야 물가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으랴.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용산은 전혀 몰랐다.

선거는 경제라고 한다. 경제는 국가 수준의 말이고, 국민들 입장에서는 민생이다. 온 나라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친지가 오래다. 그런데 대통령실만 몰랐거나 모른 척했다. 그러나 선거 때는 다르다. ‘상저하고’니 하는 말장난이 통하지 않는다. ‘물가가 이 지경인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야당의 비판이 듣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파를 들고 시늉을 냈는데 그게 더 큰 사고를 만들었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별의 순간’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정부를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했다. 이 우화에서 임금님에게는 사실 큰 잘못이 없다. 허영과 탐욕에 가득 찬 신하들이 우스꽝스러운 행렬을 만든 주범들이다.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옷을 칭송하며 아첨 경쟁을 벌였는데, 주변에서 모두 그렇다고 하니 임금도 깜빡 속아 넘어간 것이다. 마트에 나타난 대통령의 행렬이 그 우화의 절정이었다.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지요?’ 대통령은 마치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어깨를 들썩이는 임금님처럼 보였다.

지난 2년간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이날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가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수 언론부터 태도가 달랐다. 제 코가 석자였던 것이다. 진실을 본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여당의 한 후보는 ‘한 뿌리’였을 거라며 임금님의 부끄러움을 가려주려 했는데, 오히려 더 큰 웃음을 불러왔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우리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한 달 전과 비교해 보면,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 2년간의 국정 지지율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꽁꽁 숨어 있어야 했다. 그랬다면 선거 판세는 여전히 막상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육식성 포유류인 호랑이는 쑥과 마늘로 100일을 버티기가 어렵다. 선거 판세가 조금이라도 유리해지면 금방 고개를 쳐들고 싶은 것이 권력욕이고 인지상정이다.

욕망은 늘 합리적 판단이라는 외피를 두른다. 용산이 빠진 선거에서 한동훈 위원장이 이끄는 여당이 1당이라도 하게 되면, 대통령은 곧바로 레임덕이다. 선거에서 이긴들 얻는 것이 없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연상된다. “대통령님, 이대로 놔두면 마치 당이 자기들이 잘해서 이긴 줄 압니다.” 용산은 선거 승리의 주역이 자기들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의대 증원 문제를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대화와 타협으로 잘 종결하면 되는 상황에서 던진 무리수였다. 스스로 던진 미끼를 스스로 물어버린 셈이다.

선거가 조금 유리해 보이니, 용산의 속내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대통령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최대 약점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황상무 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은 현재 용산의 상황과 총선 이후 이 정부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었다. “우리는 잘하고 있는데 국정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언론 때문입니다, 선거만 이기면 곧 정리하시지요.” 국정 지지율이 2년째 저 지경인데도 용산이 잠잠했던 것은 임금님의 귀에 저렇게 속삭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처음부터 군주가 두려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사랑받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받는 것이 더 나은 이유는,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 가장 나쁘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대통령은 두려운 존재였다.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검사가 검찰총장이 되고, 현직 대통령과 또 싸워서 이기더니,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로도 가차 없었다. 배우고 익힌 대로 했다. 선거로 뽑힌 당대표를 검찰 수사하듯 조여나가니 결국 몇달도 버티지 못했다. 검찰 인사를 하듯이 사실상 당대표를 지명했고, 결국 그마저 갈아치우고 심복을 심었다. 그런데 그 심복이 자기 살림 차리더니 딴마음을 품는 것 같다. 그래서 세 과시를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가장행렬의 실체가 드러나 버렸다.

총선 이후 사람들은 대통령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관후 정치학자

이관후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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