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수여, 전태일정신의 박제화

2020.11.12 03:00 입력 2020.11.12 03:02 수정

11월13일, 1970년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이날 정부가 그에게 국민훈장 1등급인 무궁화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산업민주화와 노동권익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정부가 ‘공식 인정’한다는 취지다. 어리석은 발상이다. 1980년대 변혁운동은 19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을 ‘사후적으로’ 열사로 소환하면서 시작됐고 1987년 민주화는 그 결실에 해당한다. 정부로서는 그에게 훈장을 줌으로써 민주적 정통성과 노동 친화 정당임을 강변하고 싶겠지만 과욕일 뿐 아니라 무지의 소치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우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렇다. 불과 얼마 전 30대 택배노동자가 “한숨도 못 자 너무 힘들다”는 메시지를 남긴 후 과로사했다. 각성제를 먹으며 졸음을 참던 평화시장 봉제공장 여공과 무엇이 다른가. 2003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이 전태일과 똑같은 유서를 남긴 채 목을 맸고 2013년과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최종범과 염호석이 전태일과 같은 꿈을 꾸며 목숨을 끊었다. 2018년 김용균이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 달 전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임을 당했고 2016년 구의역 김군이 전동차에 끼여 사망했지만 2019년 한 해만 해도 202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과연 훈장 수여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음으로, 훈장 대신 사죄가 필요하다. 정부가 밝혔듯 훈장 수여는 ‘공식 인정’(공인)의 의미를 갖는다. 또 특정 기억에 대한 정부의 공인 행위는 대항기억이 공식기억의 지위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사태로 불리던 5·18항쟁이 1995년 특별법 제정 이후 5·18민주화운동이 되고 제주4·3이 대통령 사과와 기념일 지정으로 좌익게릴라의 무장폭동에서 군경에 의한 양민학살로 공식화된 일 등이 그렇다. 월북작가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읽히게 된 것도 대항기억이 공식기억의 지위를 얻는 일로 해석할 수 있다.

전태일과 그의 죽음은 다르다. 별도의 공인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오랜 저항의 역사에서 훈장 수여에 비길 수 없는 기림을 받아왔다. 여기에 더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머리 숙여 사죄하는 것 외에는 없다. 더욱이 전태일은 이미 개인이 아니라 ‘정신’이다. 또 그 정신은 수많은 전태일들로 이어져왔다. 1984년 민경교통 택시노동자 박종만, 1986년 구로공단의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와 한진중공업 김주익 등이 그렇다. 지금 현재도 아스팔트와 노동현장에서 또 다른 전태일들이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렇듯 수많은 전태일들에게 훈장을 수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전태일에 대한 훈장 수여는 위선에 불과하다.

끝으로, 죽음을 ‘공로’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전태일은 생전에 바보회를 만들고 삼동회를 조직하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를 추모해온 까닭은 죽음 때문이다. ‘열사’는 자살과 타살을 막론하고 ‘죽음’에 초점이 맞춰진 호칭이다. 전태일을 열사라고 부르는 것처럼 전태일이 “산업민주화와 노동권익보호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 자체에서 나온 것이다.

전태일의 분신은 1970년대에 극단적 자기희생으로 해석됐으나 5·18광주항쟁 이후 지배세력의 폭압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 됐다. 이와 함께 1980년대 변혁운동은 전태일을 열사로 소환하면서 수많은 다른 열사들을 만들어냈다. 죽음을 투쟁의 무기로 삼게 된 것이다. 저항의 마지막 수단으로서 스스로의 생명을 바친 일은 더없이 숭고한 일이지만 그 숭고함에 머리를 숙일지언정 공로로 간주해 칭찬하고 찬양해서는 아니 된다.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할 생명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도 된다는 승인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운동을 관통하는 핵심적 기억이고 그 내용은 ‘저항’이다. 훈장 수여를 통해 수훈자는 국가제도 안으로 포섭된다. 저항이 제도 안으로 포섭될 수는 없다. 훈장 수여는 전태일의 저항정신을 박제화하는 것이다. 전태일에 대한 진정한 추모는 그를 훈장의 울타리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태일정신을 계승하는 일이어야 한다. 1980년대 열사 호명은 또 다른 열사로서 전태일들을 탄생시켰을지 모르지만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죽은 열사를 죽음으로써 뒤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산 자가 존엄한 인간으로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전태일정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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