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스포츠 ‘인사청문회’

전쟁이라는 비상사태가 끝나자 곳곳에서 무장반란과 폭동이 발생하였다. 각 지역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내전직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 건국 초기 국가적 위기를 맞았던 것은 최초 제정된 헌법 설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권력에 대한 견제만을 목표로 삼았을 뿐 권력이 만들어지고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연맹헌법은 공화국을 파괴시키는 괴물이 되었다. 견제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민주주의이지만 견제만으로 민주공화국을 지킬 수는 없다. 견제가 권력의 구성을 어렵게 하는 정도에 이른다면 이미 정상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김진한 헌법전문가·독일 에어랑엔대 방문학자

김진한 헌법전문가·독일 에어랑엔대 방문학자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에서 공직후보자들을 범죄 혐의자나 로또 당첨자 취급을 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많은 후보자들이 인격의 가치를 부정당하였다. 물론 후보자들이 깨끗했다면 괜찮았을 것이고, 임명권자가 제대로 된 후보자를 골랐으면 문제없었을 것이라는 반론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구성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 탓을 하고 있을 만큼 한가로운 문제가 아니다. 평균적인 도덕성을 갖고 있는, 하지만 적합한 능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목표로 맹렬하고 과감하게 작동되어야 하는 것이 인사 시스템이다. 그래서 적임자를 구할 어망은 가장 넓은 바다를 목표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물고기를 겁주어 모두 달아나게 한 뒤 도덕 상위 1%의 물고기만 잡아야 하는 규칙이라면 그 고기잡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다.

국민 스포츠 인사청문회. 최근에는 경기장 주변에 칼을 가진 이들까지 자주 등장한다. 대역죄의 수사에서나 볼 수 있는 대규모 수사가 후보자 본인과 가족을 향해 진행된 것도 최근 일이다. 법 위반이 발견된 이상 차이를 둘 수 없다고 하지만 그들이 공직 후보자가 되지 않았다면 그런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감히 공직후보자가 되지 말거라.’ 한편에서는 삼고초려하여 후보자로 임명하고, 다른 한편에서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의 인격을 말살하고, 심지어 그 가족을 처벌하는 이 희비극의 공연에는 ‘어느 공화국의 자살’이라는 제목이 맞춤이다.

여야가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선 방향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희귀한 합의 소식이 반갑고 고맙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합의에는 과거의 솔직한 고백이 빠져있다. 청문회의 문제는 질문자여야 할 청문위원들이 심판자의 역할을 담당하려는 데에서 발생한다. 청문위원들의 그런 과잉행위는 나라를 위한 마음 때문이 아니다. ‘다음 선거를 위해서는 방송에 나와야 한다.’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는 순간 이들은 염치와 직분, 상식과 논리를 잊는다. 공정하고 이성적인 청문회를 위해서는 방송촬영이 금지되어야 한다. 바로 같은 이유로 재판법정에 방송과 카메라 촬영이 금지되는 것이다.

개선된 청문회를 상상해본다. 방청석엔 기자들이 가득하다. 단지 카메라만 없을 뿐. 일부 의원들의 과잉행위는 우스꽝스러운 일탈행위로 치부된다. 잘 준비된 논리적인 질문을 하는 의원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후보자들은 밝혀진 잘못은 솔직히 시인하고, 정책에 관한 소신을 당당히 밝힌다. 청문회장의 이성적인 토론을 초대할 수 있다면 시민들은 더욱 자유로울 것이며, 민주공화국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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