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쐐기돌’ 찾기

2020.12.19 03:00 입력 2020.12.19 03:01 수정

민주주의의 열쇠를 찾아보겠다고 고국을 떠나온 지 여러 해. 가져온 수수께끼 보따리를 풀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또다시 한 해의 마지막이다. 그나마 우연히 본 자연 다큐멘터리 속에서 명확하지 않지만 생각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김진한 헌법전문가·독일 에어랑엔대 방문학자

김진한 헌법전문가·독일 에어랑엔대 방문학자

1960년대 유럽과 미국의 몇몇 생태학자들은 세상의 각기 다른 오지에서 자신들의 연구를 진행했다. 서로 알지도 못하고 연락도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연구결과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날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연구를 경청하였고, 자신들의 발견은 각기 독자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연계의 일반적 법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자는 어느 오지 바닷가에서 불가사리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일정구역의 불가사리들을 모두 제거해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해안가는 오로지 키조개만이 사는 죽음의 장소로 바뀌었다. 다시 불가사리를 풀어 놓았더니 다양하고 풍요로운 생태계로 회복되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오로지 성게들만이 무한 번식하는 죽음의 바다를 연구하였다. 그곳 생태계가 붕괴된 원인은 해달이 멸종했기 때문이었다. 그곳 최상위 포식자인 범고래들은 원래 고래들을 먹이로 삼고 있었다. 인간들의 남획으로 고래가 사라지자 굶주린 범고래들은 해달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게 되었고, 해달이 사라지자 생태계가 무너진 것이다. 고래사냥이 금지되어 고래가 돌아오고, 그 후 해달들이 돌아오자 그 바다는 다시 풍성한 생태계의 보물창고가 되었다. 연구자들은 이들처럼 생태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생물에 ‘쐐기돌(keystone) 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건물에서 균형의 열쇠 역할을 하는 쐐기돌이 빠질 때 건물이 붕괴하듯, 쐐기돌 종 생물들이 사라진 곳의 생태계는 무너져버린다. 이 발견은 생태계를 다시 살리는 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생태계 전체를 모두 갈아엎고 모든 잘못된 것을 일일이 교정하여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을 차분하게 관찰하고, 열쇠 역할을 하는 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생물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야말로 생태계를 회복하게 하는 결정적 지원이 된다.

인간들의 권력 생태계도 종종 붕괴한다. 힘과 탐욕의 법칙만이 남은 왜곡된 권력사회를 다시 균형 잡힌 사회로 회복시키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종종 1차 관문인 잘못된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한 이들도 최종목표인 ‘균형’을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능력에 대한 과신과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과욕은 결국 그들 스스로를 새로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우리 사법권력의 생태계는 아직도 빽빽하게 자라나는 비정상에 지배당하고 있다. 권력왜곡의 연결고리인 전관예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공화국의 사법 문제에 대한 장단기 정책을 수립해야 할 법무부의 검찰청 예속현상은 이대로 좋은가?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개혁이란 눈엣가시인 사람을 제거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열쇠가 될 결정적 제도가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 현상에 대한 객관적 탐구와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야말로 가장 전면적인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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