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글을 왜 쓰는가?

2020.12.14 03:00 입력 2020.12.14 03:01 수정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방 안에서 벽에 대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급히 몇 자 적어서 신문사에 보낸다.”

한 해가 간다. 코로나19 한가운데에서 나도 올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최고의 문장은 바로 저 문장이다. 올해만이 아니다. 지난 몇 년을 돌아봐도 저 문장이 최고의 문장이다. 저 글을 읽고, 올해는 해가 넘어갈 때쯤 저 문장을 최고라고 말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충 살고, 겁쟁이로 살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그러고 산다. 저 문장의 앞은 다음과 같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나는 이 사태가 계속되는 한 4차 산업이고 전기자동차고 수소자동차고 태양광이고 인공지능이고 뭐고 서두를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날마다 우수수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서 땅바닥에 부딪쳐 으깨지는데, 이 사태를 덮어두고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앞으로 나갈수록 뒤에서는 대형 땅꺼짐이 발생한다.”

“방 안에서 벽에 대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최근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글을 본 느낌이 들었다. 큰 지면도 아니다. 처음 김훈의 글이 실린 ‘왜냐면’ 코너는 한겨레신문이 반론 같은 글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해온 약간은 작은 지면이다. 김훈의 이름을 생각하면 문화일보에서 도올 김용옥을 예우했던 것처럼 한 면 다 털어서 전면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원고지 열 장, 그것도 남들이 주로 반론을 쓰는 작은 공간에 TV를 보다 말고 벽을 보고 한참 중얼거리던 김훈이 정말로 소박하게 글을 썼다. 그리고 이 작은 글은 지지부진하던 우리들을 깨워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형체를 만들게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물꼬를 튼
작가 김훈이 신문에 쓴 작은 글
‘저 놈 죽여라’식 편싸움의 일환인
한국 엘리트들의 글과는 결이 달라
내 글도 진영에 갇혀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국의 엘리트들이 신문에 쓰는 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나 자기 편에 도움이 되므로 쓰는 글, 다른 하나는 자기 얘기가 하고 싶어 쓰는 글이다. 전문가들도 대개는 지지하는 진영이 있다. 자기 편에 도움이 되는 글은 열심히 쓰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침묵한다. 전문성 있는 ‘공익’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편싸움의 일환인 경우가 많다. 올해는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영향력 유지를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길게 보면 결국 먹고살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우리 사회 취약계층에 대해 쓴 상당수 글조차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 편 먹고 패싸움 하는 와중에 취약계층을 글의 모티브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들여다보면 결국 자기가 지지하는 당을 지지해달라고 하거나, 자기 편을 도와달라고 하는 말이다. 아니면 그냥 우리 편 만세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썼거나.

반면 밥벌이나 자신의 인지도 및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면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진중권의 글은 아마도 쓰고 싶어서 쓰는 글에 들어갈 것이다. 그가 먹고살기 위해서나 명예욕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칭 보수라고 하는 김훈, 이 특별한 남성 엘리트의 글은 결이 좀 달랐다. 겉으로는 정부 비판 같고, 작게 보면 노동정책, 크게 보면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 같지만, 속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며,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얘기일 수도 있다.

나는 김훈의 팬이 아니다. 그가 시사저널에 몸담았던 시절 그의 글을 재밌게 봤지만, 기자 은퇴 후에는 그가 하는 얘기도 그렇게 탐탁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하는 그가,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자본의 옆에 붙어서 그걸 잘 길들여서 떡고물이나 먹자는 이야기가 아니냐,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 김훈이 벽에 대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DJ가 벽에다 대고 뭐라고 하자는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맥락은 다르다. 한국의 수많은 필자들, 1년 내내 결국은 “저 놈 죽여라”라는 글만 쓰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어떤 때에는 코로나를 핑계로, 어떤 때에는 검찰개혁을 핑계로 1년 내내 “저 놈 죽여라”, 그랬던 거 아닌가 싶다. 진영을 벗어나면 돌덩이가 후두두 날아오는 시대가 되었다.

전문성, 명망가, 참신성…. 신문에 글을 쓰게 되는 이유는 많다. 그러나 김훈과 같은 동기로 진영을 넘어서는 글을 쓰게 되는 일은 잘 없는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내가 그렇다. 맨날 저놈 죽여라 하고 있으니, 내가 쓰는 글들은 아무 힘이 없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이 “글은 힘이 없소”, 그렇게 말하고 총을 들었다. 나는 총을 들 수 없으니 펜을 들었다? 쉽지만 값싼 변명이다.

김훈이 코로나 위기인 어느 화창한 5월,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대답하기 어렵다. 이제 그만 써야 할까? 한 해가 가면서 이 질문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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