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공약을 보며

2021.01.04 03:00 입력 2021.01.04 03:02 수정

올해는 서울시장 등 주요 지자체장 보궐선거가 열린다. 여러 명이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나온 공약이나 비전으로 보면 서울에 대해 그나마 뭔가 알아먹을 수 있는 형태로 얘기를 한 건 서울 서초구청장인 조은희가 유일한 것 같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경부고속도로와 지하철 2호선의 지상구간을 지하화해서 뭔가 하자고 하는 건데,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지하도시’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꺼낸 것이다. 지하도시는 박원순도 하고 싶어 했고, 2호선 지하화는 국회의원 시절, 추미애도 늘 꺼내던 것이다.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도 광화문 일대의 지하도시와 연계해 시작한 것인데, 내부적으로는 격렬한 토론이 있었다. 공무원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은 GTX 청사와 연계, 광화문 지하도시의 길을 갈 것이다.

토건과 지하도시라는 주제는 좋든 싫든, 이제는 피하기 어려운 논쟁이다. 땅 위에는 더 이상 파먹을 게 없으니, 이젠 지하로 가자, 토건자본이 선택했던 서울의 미래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미래는? 논쟁거리다.

흐름에 큰 반전이 없다면, 나경원이 서울시장이 될 것 같다. 김진애는 내용은 있지만, 힘이 없다. 조은희는 어쨌든 지하도시라는 선명한 방향성이 있지만, 역시 힘이 없는 것 같다.

뭐든지 다 풀어 집을 짓겠다는
주요 후보들의 공약대로라면
서울은 다시 공사판이 된다
토건 말고 최소한의 품격 갖춘
미래 수도 비전을 기대해 본다

안철수는 대선후보급이라서 힘은 있는데, 서울에서 뭘 하고 싶어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찬성도 어렵고, 반대도 어렵다. 금태섭은 흐름은 탔는데, 역시 뭘 하고 싶어 하는지가 없다. 교통방송에 인사권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 서울시장이 되려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듯싶다.

역대 서울시장 중에서는 고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건설회사 사장들은 그를 정말 싫어했지만, 벽돌 담장을 꽃담장으로 바꾸면 지원금을 준다고 했다. 나중에 이명박이 은평뉴타운으로 밀어버린 한양주택 마을을 일종의 생활공동체로 지원한 것도 고건 시장 시절의 일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열린우리당을 지우고 싶은 악몽처럼 생각하겠지만, 서울시에 대한 가장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구상은 열린우리당이 추진했다. 김영삼 때 잠시 논의하다가 만 서울시 분할 문제를 좀 더 종합적인 형태로 구상했다. 경기도를 경기남북도로 나누고, 서울도 프랑스처럼 5개의 광역시로 나누는 열린우리당의 논의는 신선했다. 그 시절, 새누리당은 서울을 더 키워서 더 큰 광역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다.

나는 여전히 행정구역으로서의 서울은 도심 일부로 더 작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옆으로, 위로 그리고 그린벨트로 서울이 팽창하면 비수도권 지역의 도시들은 정말 살길이 없다. 수도로서의 서울의 비전은, 스스로 절제하며, 전기·물·폐기물 등 많은 것들을 자급에 가깝게 전환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래저래 용적률 올려서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지하도시 건설로 돈을 빨아들이고, 자원 관리는 다른 도시에 의존하는 기생충처럼 몸집만 키우면 이 나라는 망한다. 삶의 질과 내실을 키우면서, 다른 지역과 물질적 협력관계를 높이는 것, 그것이 도시 비전이 될 수는 없는가.

지금 서울시장 주요 후보들이 제시하는 공약대로 가면 이명박 때 그랬던 것처럼 서울은 다시 10년간 공사판이 된다. 서울은 자원과 에너지의 다운사이징, 삶의 질과 복지에서는 업사이징, 문화적으로는 다양성, 이런 것들이 필요한 도시다. ‘관습헌법’상 수도라는 서울, 이제는 수도로서의 품격과 생태도시로서의 의무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시장은 서울시의 일만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도로서의 이 거대한 도시가 가지는 전국적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조은희의 공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열린우리당이 좀 더 성공한 정당이 되어서, 그 시절에 서울의 분할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아마 서초구와 강남구는 지금쯤 강남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서초구청장의 성공을 가지고 강남시장 하면 딱 맞을 공약이다. 그러나 그의 지하도시 개발안이 서울시 전체에 맞는 것은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보궐선거에서 서울시 분할에 대한 비전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이런 건 대선같이 보다 큰 장소에서 논의할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특정 도시로서의 서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도로서의 품격을 살펴보면서 공약을 제시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린벨트든 지하든, 역 근처든, 뭐든 다 풀어서 집을 짓는다는 건 건설협회 공약이지, 진짜 수도의 미래 비전이 아니다. 우린 건설협회 혹은 토건협회 서울지부장이나 강남시장 뽑는 선거를 치르는 게 아니다. 수도를 자임하는 도시의 공약이라면 최소한의 도시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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