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소득

2021.02.18 03:00 입력 2021.02.18 03:03 수정

#기본소득. 개개인이 재산이나 근로 등 아무런 조건 없이 주기적으로 받는 현금(‘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의 정의)을 말한다. 부모를 잘 만나지 않아도, 평생 일하지 않아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저생계비를 현금으로 준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대선후보 조사 1위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공언하기에 국민들의 기대감은 한껏 높아져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도로 정착은커녕 시행조차 해본 나라가 없다. 핀란드는 몇년 전 실업자 대상으로 일시적인 샘플링 실험만 했고, 스위스 국민은 웬일인지 기본소득 도입을 국민투표로 부결시켰다. 유일한 사례라는 알래스카는 복지제도로서 기본소득이라기보다 석유수입으로 만든 지역영속기금(APF)으로 열악한 정주환경을 메우는 ‘정착자금’에 불과하다.

구재이 한국납세자권리연구소장 세무사

구재이 한국납세자권리연구소장 세무사

그런데도 한국은 지금 기본소득 이상열기다. 여야 정치인들은 기본소득에 찬동하면서 기본소득이 갖는 높은 요구조건에 비춰 생활비에 조금 못 미치거나 선별지급이라도 이야기하면 서로 비난하기 일쑤다. 과연 한국이 논쟁과 ‘열패의식’을 딛고 세계 최초로 전 국민 대상 기본소득을 실현할 수 있을까.

#신복지체제. 대선 정국 초입이지만 달궈진 복지 논쟁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현 복지제도를 바탕으로 한 중산층 수준의 보편적 생활복지체제라는 ‘국민생활기준2030’을 내놓았다. 아동수당을 3배 수준인 만 18세까지 확대하고 전 국민 대상 상병수당과 고용보험을 포괄하는 내용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보장을 지향하면서 아동, 장애인, 노인 등 생애주기별 수당도 확 늘렸다. 기본소득의 영향이다.

#문제는 재정. 기본소득이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경제 수준에 걸맞지 않은 복지지출과 시스템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의 복지지출은 GDP의 12%에 불과해 30%대의 복지선진국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0%에도 훨씬 못 미친다. 복지만 충분하다면 공짜돈이 아니니 국민들은 기본소득에 흥미를 잃는다.

기본소득이 생활비 수준, 보편성과 주기성을 의미하는 ‘기본’을 갖추려면 국민 1인당 월 50만원 이상은 지급되어야 하니 연간 300조원이 넘는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중산층 수준을 지향하는 국민생활기준을 위한 재정도 만만치 않다. 아동수당만 해도 10조원에 달하는 등 재정부담으로 계획을 다 실현하려면 연간 5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도입 초기 증세 없이도 예산지출과 조세감면을 확 줄여 연 100만원 수준으로 일단 시행한다고 하지만 한번 시행하면 단박에 약정채무가 되고 기본소득을 중단하기는 어렵기에 불확실한 재원계획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복지지출에 걸맞은 세입이 안정적으로 가능한 세제 개혁과 증세 논의는 필수다. 과표 양성화는 물론 사회보장 기능까지 갖춘 소득파악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 기본소득 팬덤의 국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청구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회연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용과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서 폐업과 실업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고 있다. 이미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로봇과 인공지능(AI), 플랫폼 기반의 경제 재편으로 인한 일자리와 소득 감소는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기본소득에 경도된 사이, 세계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연대성’에 기초한 조세와 공동체 기금 도입 등 사회연대 논의를 빠르게 진척시키고 있다. 우리도 포용적 사회연대로 조세 기능을 확장시켜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등장한 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과 플랫폼 등에 연계된 사회연대세 등 과세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사회구성원의 소득보호에 연계시킨 사회연대소득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앙꼬 없는 찐빵’처럼 기본소득에 ‘기본’이 없으면 안 되지만 ‘기본’을 제대로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이제 기본소득은 기본이라는 외형에 얽매이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포용적인 사회연대소득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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