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리셋의 시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

2021.02.11 03:00 입력 2021.02.11 10:04 수정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클라우스 슈밥의 저서 <위대한 리셋(Great Reset)>이 최근 번역, 출간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리셋이 거대한 것일 수도 위대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한마디로 거시적 차원에서 미시적 차원, 심지어 개인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총체적으로 “다시 세워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성장과 고용, 불평등, 사회계약, 큰 정부의 귀환, 글로벌 거버넌스와 자국중심주의, 기후문제와 환경, 디지털 전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등 방대한 어젠다들을 파노라마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완고한 진영논리나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기댄 해석을 잠시 걷어내고 바라보면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대담론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슈밥 회장은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이제 맹목적 시장숭배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 강조한다. 자유시장, 자유무역, 자유경쟁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모든 사람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아니다. 기술 진보는 종종 독점화된 경제에서 나타나며, 사회 진보보다는 기업의 이익이 더 우선시되곤 한다. 오늘날 주요국의 중산층은 줄어들고,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 부모들보다 가난하다. 소위 슈퍼스타 기업들은 이윤의 80%를 가져가는 반면 좀비기업들, 즉 3년 이상 부채로 인한 금융비용보다 적은 이익을 내는 기업들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고 있는 현상이다. 1950~196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에 엄청난 번영을 가져왔던 경제시스템이 이제는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결과들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WEF 국제기업자문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측정지표체계를 마련해 발표한 바 있다. 올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실천’이라는 슬로건하에 21개의 핵심지표와 34개의 확장지표들을 제안했다. 핵심지표는 비교적 잘 정립되고 중요한 지표 및 기준으로서 많은 기업들이 해당 정보를 이미 발표하고 있거나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정량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확장지표는 기존의 관행과 표준으로는 잘 정립되지 않은 것들로 기업을 넘어 가치사슬 전체에 걸친 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표들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ESG 경영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들이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60여개의 글로벌 기업이 이 제안의 채택에 동의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 작년에 발표한 ‘다보스선언 2020’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기반한 기업의 윤리적 강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면, 그 구체적인 측정 및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70년 밀턴 프리드먼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한 이후 대대적인 규제 완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주주 가치는 기업의 핵심적인 목적으로 간주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는 오직 돈만 번다”는 슬로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건물 현관에 걸린 문구였다.

WEF가 주장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일종의 캠페인이나 윤리강령에 그치지 않고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실패를 치유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기업 활동과 목적의 180도 전환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단지 단기적 목표 대신 자기 조직과 사명에 대한 장기적 관점을 가지면 협소한 자기 이익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복리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웅변하고 있다. 이런 비전이 우리 기업 현실에서도 구체화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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