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으로 가는 길에는

2021.03.30 03:00 입력 2021.03.30 03:03 수정

[박래군의 인권과 삶]안산으로 가는 길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예년보다 더 일찍 피었다고 한다. 7년 전보다는 2주나 먼저 피었다.

제주4·3 피해자들이 동백꽃이 필 때부터 매년 몸살을 앓듯이, 5·18 피해자들이 5월이 오기 전부터 마음이 아프듯이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벚꽃이 피기 전부터 마음이 아프다. 7년 전 그날 단원고에는 벚꽃이 만개했고, 바람에 꽃잎이 흩날렸다. 4월15일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금요일인 4월18일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단원고 학생 250명, 교사 11명, 그리고 일반인 승객과 선원 43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았던 때가 기억난다.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법 시행령안’은 특별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독소조항으로 가득했다. 이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세월호를 온전하게 인양하라고 요구하며 세월호 유가족들은 광화문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제발 돈 더 받아내려고 떼쓰는 유가족으로 매도하지 말라고 호소하면서. 그렇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런 호소를 철저하게 외면한 채 마치 엄청난 보상금을 주는 것처럼 호도했다. 그러자 유가족들은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눈물로 삭발을 했다. 그런 뒤 안산으로 내려가 소복을 입고 아이들의 영정을 가슴에 안은 채 1박2일의 도보행진에 나섰다. 그 도보행진 길 양옆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바람에 꽃잎이 흩날렸다. 아들을 잃은 한 엄마가 그랬다. “저 벚꽃들 모두 잘라버리고 싶다”고.

7년이 지났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지난 1월22일 청와대 앞에서 다시 삭발을 했다. 검찰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였다. 특별수사단은 세월호참사 유가족들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수사 의뢰한 17개 혐의 중 2건만을 기소하고, 13건은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는 침몰 원인, 구조 방기, 진상규명 방해 행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강제수사권이 없는 사참위가 어렵게 조사를 통해 확인한 사실조차 관련자들의 형식적인 답변만을 인용한 결과다. 결국 검찰이 ‘선택적 정의’에 입각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오히려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니 7주기를 맞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의 속은 어느 때보다 더욱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매년 5월 광주에서는 소주 판매량이 급증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날의 기억이 살아나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월호참사 유가족만이 아니라 그날을 기억하는 안산 시민들과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많은 시민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아무리 더디더라도,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덮으려 해도 진실은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사참위는 전면적인 진실규명은 아직 못해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진실규명을 위한 단서들을 속속 확인하고 있다. 국정원의 관련 문서 64만건을 확인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특검도 곧 임명될 것이니 검찰이 덮으려 했던 진실의 일단도 드러날 것이다.

지난 28일에는 인천추모관 앞에 노랑 바람개비 언덕이 만들어졌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진통을 겪었던 안산의 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는 국내외에서 많은 작품이 접수되어 성공리에 추진되고 있다.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궁극적으로는 안전사회를 만들어 다시는 세월호참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4·16재단이 추진하는 안전사회 사업들도 점차 방향을 잡아가는 일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7년은 의미 없이, 속절없이 흘려버린 시간이 아니다. 올해 7주기에는 아직도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있고, 진실규명을 요구한다는 마음을 노란 리본으로 표현해주면 어떨까? 주말이면 광화문으로 올라와 촛불을 들고는 안산으로 내려가는 그 길에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벚꽃 대신 노란 리본의 가로수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가 되어야 만개하는 벚꽃을 아픔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봄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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