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거부하겠다는 사람들

2021.04.27 03:00 입력 2021.04.27 03:03 수정

[박래군의 인권과 삶]인권을 거부하겠다는 사람들

내년 3월9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라는 걸 서울시교육청 앞에 가서 알게 되었다. 서울시교육청 앞은 조용한 날이 없다. ‘서울시 교육이 죽었다’고 하면서 장례식장에서나 보는 조화가 교육청 정문 앞에 즐비하다. 한쪽 구석에는 축하 화환도 있지만 관리되지 않아서 꽃들이 거의 없거나 시들어버렸다. 때로는 상여소리를 하루 종일 틀어 놓는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지난 4월1일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을 발표했다. 그러자 교육청 앞에는 ‘태극기 부대’로 통칭되는 많은 극우세력들의 집결장이 되었다. 그들은 천막을 치고 조희연 교육감과 교육청 직원들을 향해 온갖 쌍욕과 막말을 퍼붓는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배지와 리본을 보면 광분한다. ‘쌍시옷(ㅆ)’이 들어가는 욕설과 지난해 총선 시기에 일부 국민의힘 후보가 썼던 모욕적인 막말을 해댄다. 그들은 욕설과 혐오표현의 특권이라도 거머쥐었는지 거침이 없다.

특히 유튜버를 자처하는 몇몇 사람들의 행태는 더욱 심하다. 자신들의 유튜브를 통해 교육청 앞 농성을 지지해달라고 하면서 거기서도 막말과 욕설을 퍼붓고, 교육청 앞에서도 그걸 거친 행동으로 직접 나타내고 다시 그걸 생중계한다. 우리는 그들이 거친 욕설과 막말, 혐오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이유를 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회 수가 곧 수익이 되는 구조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농성을 ‘서울시 교육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이라는 이들이 내년 3월9일 대통령 선거 때까지 이어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교육 문제로 농성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결국 교육 문제를 선거에 이용하겠다는 저의를 서슴없이 내보이고 있다.

그래도 농성하는 이유를 들어는 봐야 해서 지난주 직접 현장에 나가 봤다. 크게는 두 가지 주장이다. “조희연부터 성전환 수술하라”는 구호로 집약되듯이 그들은 서울시교육청이 동성애를 조장하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실시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 발표된 학생인권종합계획 어디에도 ‘동성애를 조장하는 교육’을 하겠다는 대목은 없다. 다만, 종합계획의 맨 앞자리에 놓인 ‘차별·혐오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계획 중에 장애학생, 다문화 학생, 성소수자 학생, 학생 선수 등에 대한 보호 및 지원을 제시하고 있고, 소수자 인식 개선을 위한 인권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돼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성소수자 학생을 보호한다는 말을 동성애 조장이라는 말로 의도적으로 오독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좌파 교육감 조희연은 사퇴하라”는 주장이다. 이번 계획 중 세 번째 정책목표로 제시된 ‘민주시민 역량 강화’ 중에 청소년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 ‘교원의 노동인권교육 역량 강화’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자료 개발 및 보급’이 들어가 있다. 청소년들이 알바 현장에서 노동법을 몰라 알바비도 뜯기고, 노동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다 보니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신들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의 요청에 따른 것임에도 이를 이처럼 매도하고 있다. 사실 노동인권교육은 벌써 시작됐어야 할 일인데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거기에 학생을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가시키는 등 학생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도 그들이 서울시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반대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그들은 단지 혐오표현을 특권처럼 여기는 혐오세력이다. 그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신의 욕설과 막말,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인 것처럼 호도하고 자신들의 그런 더러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다. 저들의 혐오표현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6일 시작된 혐오세력들의 서울시교육청 앞 천막 농성이 21일째 이어지고 있다. 그 숫자가 더해지는 것만큼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언제까지 저들의 혐오표현을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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