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대한 비난의 기시감

2021.04.08 03:00 입력 2021.04.08 03:04 수정

내가 20대일 때 ‘20대 개××론’이라는 게 있었다. 보수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20대를 비판하는 내용과 함께 20대의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비판이 컸다. 20대를 향한 김용민씨의 기고문 제목은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였다. 다시 찾아 읽어본 기고문의 마지막은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로 끝난다. 담론의 제목부터 비속어가 들어갔으니 20대에 대한 원망을 알 만하다.

이총희 회계사

이총희 회계사

그때의 20대는 이제 30~40대가 되었을 것이다. 투표율도 올랐고 촛불을 들고 광장에도 나갔고 정권도 바뀌었으니 그때의 20대가 그렇게 구제불능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에서 다시 20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금의 20대는, 10년 전에 그들이 희망을 걸던 촛불 소년, 소녀였다. 그 10대들이 20대가 되어 변해 버렸다. 이쯤 되면 질문이 틀려서 답이 틀린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어떻게 20대가 저들을 찍는지 한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했길래 20대가 저들을 찍는지 반성해야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거대 양당이 내놓은 후보는 10년 전 시장을 그만둔 분과, 10년 전 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탈락한 분이다. 상대평가를 하자면 둘 중 누가 더 나은지 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절대평가로 보면 모두 함량 미달이다. 젊은 세대에겐 늘 도전하라 말하지만 기존 정당들부터 새로운 인물을 내놓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청년들은 한 번 실수하면 다음 기회가 오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너무 쉽게 기회를 얻는다.

여당을 지지하는 분들은 그래도 어떻게 야당을 뽑느냐고 말한다. 이런 생각은 산업화 세대가 민주화 세대에게 너희가 배곯아 보지 않아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선거는 차악을 뽑아야 한다, 여당이 그래도 야당보다 낫다는 주장은 10년 전부터 반복된 이야기다. 바로 옆에서 보면 50보와 100보는 상당히 멀다. 하지만 몇㎞ 밖에서 보면 50보나 100보는 같아 보인다.

20대를 보며 답답해하는 것 자체는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한참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조금 더 낫다는 사실을 강변할 시간에, 시민들의 삶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절대평가를 적용해 투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의사 표시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야당을 찍겠다는 20대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그래도 여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투표율이 어떻게 나오고 누가 당선될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샤이한 건 기존 정치를 혐오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샤이한 이들의 마음이라는 걸, 정치인들은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

보궐선거의 결과가 어떻든 부디 젊은 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지 말았으면 한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변화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선택받지 못할 테니 말이다. 젊은 세대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다. 이들의 투표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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