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의 전환기

2021.04.09 03:00 입력 2021.04.09 03:02 수정

자동차회사 중 시가총액 1위는 테슬라다. 테슬라는 스페이스X 우주선 등 다양한 사업을 하지만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은 50만대에 불과했다. 2위와 3위는 도요타와 폭스바겐이다. 두 회사는 해마다 각각 900만대 안팎을 판다. 판매량으로 따지면 테슬라가 두 회사의 18분의 1 수준이지만 시가총액은 9대 자동차회사를 합친 것보다 높다는 보도도 올 초에 나왔다. 테슬라의 압도적 우위는 미래를 선도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현대인들은 미래에 발 하나를 담그고 산다. 불과 3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요즘처럼 “미래, 미래” 하면서 살지 않았다. 당시엔 오늘이나 10년 후나, 50년, 100년 후의 삶이 거의 비슷했다. 좀 나아졌다 해도 크게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미한 차이였다. 전쟁이나 기근이라도 맞게 되면, 한 세대 뒤의 후손들이 아버지 세대보다 더 어렵게 살 수도 있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서기 원년부터 1700년 사이의 인구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은 연 0.1% 이하였다. 1인당 생산성 증가는 연 0.002%에 불과했다. 산업혁명 이후 세상이 변했다. 1700년대부터 2012년까지 세계 GDP 성장률을 추산하면 연평균 1.6%였다. 0.1%나 1.6%나 그게 그거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누적성장률을 따지면 변화는 엄청나다.

“30년이라는 한 세대가 지나면 연 1%의 성장률은 35% 이상의 누적성장을 가져오며, 연 1.5%의 성장률일 경우 누적성장은 50% 이상이 된다.(중략) 30년 동안 1인당 생산이 35~50% 늘어났을 때, 그것은 오늘날 이뤄지고 있는 생산의 많은 부문(4분의 1에서 3분의 1)이 3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오늘날의 직업과 직장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30년 전에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21세기 자본>)

그럼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2018년까지 한국의 평균 실질 GDP 성장률은 7.2%였다. 그사이 국민총소득은 500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를 보면 한국의 경우 2016년 기준 소득불평등 분포는 상위 10%가 43.3%, 하위 50%가 19.2%였다. 부의 불평등은 상위 10%는 43.3%였으나 하위 50%는 1.8%다. 한국인의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최근 부동산 폭등 이후 그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이다. 리처드 리브스는 이 시대를 ‘20 대 80’의 사회로 본다.

누적성장이 세상을 바꿨다면, 누적불평등 역시 세상을 흔들 것이다. 성장이란 고속열차에 운좋게 올라탄 20%는 2020년대에 살지만 80%는 아직도 90년대에서 밤낮으로 뛰고 있다. 이런 현실이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무엇이든 가능해 보였지만 정말로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다시 우리는 전환점에 섰다.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 세상이 변할 거라고 느낀다. 토머스 쿤이 밝힌 바와 같이 과학적 사실이 하나 발견됐다고 해서 세상이 그에 맞춰 하나씩 변해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지식으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패러다임 자체가 변한다. 인공지능(AI), 비대면 네트워크, 사물인터넷, 전기자동차가 확산되는 지금이 패러다임의 전환점이다.

과거에도 위기 이후 전환점에서 한국경제는 성장했지만, 그림자도 길고 짙었다. 외환위기 당시 ‘제일은행 눈물의 비디오’를 기억하시는가? 금융위기 때 쌍용차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가 30명에 달했다.

코로나19 이후 엄청난 과제가 우리 사회에 던져질 것이다. 전기차로의 전환기에 쌍용차와 노동자들은? 내연기관 산업이 당장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하향세로 돌아서면 그 수많은 부품업체들은? 플랫폼에 갈수록 종속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패러다임의 전환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다. 정치가 미래를 설계하면서 이익과 위험을 배분하기 때문이다.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4·7 재·보궐선거를 보면 정치는 외려 퇴행하고 있다. 집값 폭등이 사회적 분노를 일으켰으니 부동산 정책이 관심을 끌 수 있으나, 그렇다고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하면서 거대 여야가 지지한 가덕도신공항이 미래 어젠다가 될 수 없다. 상대의 무능과 허물에 기대어 살고 있는 정치에서 사람들이 ‘비전’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 역시 패러다임적 전환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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