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문법’

2021.05.01 03:00 입력 2021.05.01 03:02 수정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얼마 전 회사 동료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자신의 어머니가 확진되었다고, 그래서 가족이 모두 자가격리자가 되었다는 말을 전해왔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간 타인의 여러 조사를 겪으며 그에 맞는 위로의 문법을 배워두었으나 이렇게 당혹스러운 일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뭐라 말을 할 타이밍이 지나고 나서야 “어머님의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라는 한마디를 건넨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경험이 나뿐은 아닐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자가격리자도 몇 배수로, 자가격리자를 곁에 둔 사람들도 몇 배수로 늘었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위로의 말이 오가고 있을까.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그는 두 번의 음성 판정을 받았고 얼마 전 자가격리가 해제되었다. 축하한다고 하자 그는 축하보다는 고생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정정해 주었다. 그는 활기차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격리한 14일 동안 그는 재택근무를 성실하게 하면서 오히려 타인의 안녕을 걱정해 주었다. 그런 그도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보였다.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전해왔다. 확진 판정 이후 계속 병원에 계셨다고,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어서 나는 다시 한번 전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찾아온 이후 경조사는 대개 가족끼리 소규모로 진행하게 되는 듯하다. 그도 가족과 함께하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코로나로 인해 친·인척들과 장례를 진행함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음으로 따뜻한 위로 부탁드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코로나 시대의, 슬픈 위로의 문법일 것이다.

연락을 받고 잠시 고민하다가 나도 동료들도 ‘그래, 우리까지는 가족이지’하는 합의를 보았다. 한 개인의 노동 공간은 그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서로는 그 안에서 개인과 개인으로 만나더라도, 이러한 순간에는 ‘가족적인 회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을 건네는 법은 잘 몰라도 몸을 건네는 법은 모두가 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가 있는 곳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은 영정 사진 속 그의 어머니뿐이었다. 상주들도 문상객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눈으로만 서로를 맞이했다. 나는 서른 후반이 된 나이에도 아직 예법에 서툴다. 그의 어머니에게 조의를 표하면서 향에 불이 잘 붙지 않아 민망하고 죄송했다. 조의를 마치고 나와서 그와 마주 앉았다. 자가격리 직후 때보다 조금 더 지쳐 보였으나 마스크 너머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웃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가족들과만 함께하려 했는데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우리까지는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왔어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그런 마음으로 오셨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바깥으로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함께 간 동료 한 명이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본 그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우산을 여러 개 사 왔다. 그는 그런 중에도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몸이 젖을 것을 걱정했다.

몸의 항체는 연구하고 개발해낸 백신으로만 얻을 수 있다.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항체는 모두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고 그렇게 타인을 감각하게 되는 그 순간들이, 우리가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데 백신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마음의 백신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말과 태도로써 누구나 타인에게 접종할 수 있다. 해야 할 말을 어렵게 찾아서 하는 일, 있어야 할 곳에 몸을 가져다 두는 일,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우산을 건네주는 일.

우리는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이전보다 단단해지고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의 어머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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